I 격리정책의 전개


4 소록도 자혜의원 확장공사와 도민(島民)들의 반대투쟁

1926년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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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갱생원 {소화16년 연보}(19424월 발행) [개원이래 수용정원 및 실제수용인원 비교표(p.26-27)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년도별

1917

1918

1919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

1931

1932

1933

1934

1935

수용정원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25

125

125

250

450

750

750

750

750

1170

2770

3770

수용인원

73

85

89

95

121

171

196

195

241

249

250

443

735

742

764

792

1212

2198

3733

[수용정원]비교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927년에 250명이던 수용정원이 2년 후인 1929년에는 750명으로 3배나 증가했다는 사실과, 1933년에 1,170명이었던 수용정원이 2년 후인 1935년에는 3,77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2대원장인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의 시대에, 후자는 4대원장인 스호오 마사키(周防正季)의 시기에 해당된다.

이 장에서는 전자, 즉 하나이 원장 시기에 소록도 자혜의원의 확장계획이 실행됨에 따라, 섬 주민들로부터의 토지매입이 어떻게 강행되었으며, 그에 대한 주민들은 저항이 어떠했던가를, 경위를 따라서 살펴보기로 한다.

대한나관리협회의 {한국나병사(韓國癩病史)}(1988년 발행)에는, 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자혜의원은 1백명의 수용능력을 가지고 출범했기 때문에 확장의 불가피성은 당초부터 지니고 있었고, 또 그것은 시급을 요하였다. 이리하여 확장사업을 착수한 하나이 원장은 원주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달 밝은 밤을 이용, 기사와 더불어 토지측량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비밀은 유지되지 못하고 확장사업계획이 노출되자 이에 반발한 주민들은 원장사택으로 몰려와 강력히 항의하며 계획의 즉각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모든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원장은, 이는 국가의 방침이며 국가사업이니 방해할 수가 없다고 주민들의 요구를 일축, 짐짓 위압으로 대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병환자들과 이웃해 살아야 한다는데 대한 공포와 강제로 생활터전을 내어주고 떠나야 했던 주민들의 전례가 있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주민들은 분기하였다.

1926919, 일단 퇴각하여 숙의(熟議) 끝에 전열을 가다듬은 주민 2백여명은 제각기 손에 손에 흉기를 들고, 병원 철조망 가까이 육박하여 결사적인 생존권 보호투쟁에 돌입하였다. 70여 경찰증원군이 출동, 불상사는 간신히 면할 수 있었으나 소요(騷擾) 주모자 60명이 검거되어, 그 중 4명은 최고 36개월, 최하 1년의 실형판결을 받는 등의 수난을 겪었다(p.76-77).

 

심전황(沈田■) {아으 70-찬란한 슬픔의 소록도}(1993년 발행)에도, 이 확장공사에 관련된 사건에 대해 거의 동일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p.28-29). 과연 소록도 자혜의원 확장사업을 하나이 원장의 독단전행(獨斷專行)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조선총독부의 중추수뇌부가 지방관에게 지시·명령하여 확장사업을 강행토록 하였고, 그에 반대하는 소록도 농어민의 투쟁을 탄압한 사건이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대한나관리협회의 책자에서도, 심전황씨의 저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19961021일부터 2주간, 필자는 조선근대 한센병의 역사를 조사하기 위해, 서울, 대구, 부산 등지를 여행했다. 그 해 4번째의 방한이었다. 서울에서는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를 방문했다. 특히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일본의 국립공문서관에 해당)는 일참(日參)하여 일제식민지 지배하의 [()]정책에 관한 자료열람과 마이크로 필름을 복사했다.

정부기록보존소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북서쪽으로 도보로 8, 효자로 서쪽에 위치하는 백악의 5층 건물(출장소는 부산에 있음)이다. 필자가 찾아간 199610월은, 때마침 북한 잠수함 승무원에 의한 [침입사건]이 있은 직후로, 정부의 주요기관이 모여있는 부근 일대는 엄중한 경비태세하에 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가을풍경 속을 순찰하고 있는, 검은 제복, 검은 모자의 경찰관들의 모습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정부기록보존소 직원의 호의로 사흘 간에 걸쳐 한센병에 관한 많은 귀중한 자료를 열람하고 복사할 수가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정부기록 보존문서는 일제시대에 한정하여 말한다면 [총괄목록]으로서 제1집부터 제3집까지의 3책자와, [색인목록]으로 제1집의 I에서 Ⅶ까지의 7책자, 합계 10책자로 이루어져 있으며(1974-84년 간행), 1권의 목록이 1,000쪽 전후에 달하는 방대한 책자이다. [일제]시대에 관한 자료의 방대함과 그것들이 모두 [마이크로 필름]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정책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려고 [보건·위생]을 수록내용으로 하는 [색인목록] 1집 제7권의 [일정(日政)시대] 문서편(1984년 발간)을 뒤적여 보았다. 2편 제9장이 [보건사회], 보건 항에는 [1935년 나병요양시설 관계서류], 위생 항에는 [대정(大正)14-소화(昭和)9년 소록도자혜의원 관계철 위생과]가 수록되어 있었다. 생산기관명은 [총독부]이다.

후자의 마이크로 필름을 빌려 [마이크로 리더]로 열람해 보니, 당시에 쓰여진 그대로의 행정문서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정부총감 수신·전라남도지사 발송의 {소록도자혜의원 수용인원증가 및 그 경비에 관한 건}], [내무국장 수신·경무국장 발송의 {건명, 소록도자혜의원 부지매수에 관한 건}], …등의 총39건으로 이루어진 총독부 행정문서이다. 각 건은 더욱 상세하게 기안서·보고서 등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었다. 8장 건축 항에는 [1929년 소록도자혜의원 나병사 기타 신축공사관계철]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하, 이들 자료를 소개하면서, 이 장의 소제목인 [소록도자혜의원 확장공사와 도민(島民)들의 반대투쟁 ―1926년의 경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9162, 관립 소록도자혜의원(나요양소)은 전라남도 남단의 소록도에 설립되었다. 당초는 정원 100명의 소규모 시설로서, 초대원장은 육군군의였던 아리카와(蟻川享)였다. 19216월에 부임한 2대원장 하나이(花井善吉)도 역시 육군군의이다. 아리카와는 [무단정치기]의 식민지 의료를 실시하여, 조선의 생활습관이 몸에 익은 환자들에게 일본식 생활양식을 강제함으로서 환자들의 자유를 빼앗아, 병원은 마치 야전병원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이에 비해, 아리카와의 뒤를 이은 하나이 원장은 3.1운동(1919) 이후, 조선총독 사이토 미노루(齋藤實)에 의한 [문화정책]시대(1920년대)를 반영하여, 총독부의 조선지배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환자들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의료를 행했다. 최정기(崔晶基) {일제하의 나환자 통제에 관한 연구―나환자 관리조직을 중심으로}(전남대학교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1994) 가운데서, [2대원장 하나이는……나환자의 치료와 복지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물론, 조선총독부의 나관리 정책이 분명치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재량권 행사가 가능했던 것이다](p.43)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하나이 원장 만년인 1926년에 강행된 관립소록도 자혜의원(나요양소)의 확장, 토지매입의 문제를 통해 [문화정책]기의 위생행정의 실태를 명확히 밝힘으로서, 총독부의 조선지배의 일단을 살펴보기로 한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여 식민지화한 1910년 이후, 조선 남부에서는 경상, 전라의 각도를 중심으로 한센병환자가 급증한다. 일본 본위의 식민지 수탈정책이 조선민중의 생활을 파괴함으로서 {조선총독부 관보}에 게재되는 아사·영양실조·동사·액사(縊死) 등에 의한 행려(行旅)사망자는 엄청난 숫자에 이르게 된다. [()]발병자의 급증은 일본 식민지 통치하의 열악한 생활환경과 그에 따라 나균에 대한 저항력을 잃은 체력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총독부 경무국 조사(1923)에 의하면, 나병 증상이 외부로 나타난 자의 숫자만 보더라도, 전체 조선에 남성 3,035, 여성 1,207명으로, [4천여 나환자 중 영남이 과반수, 수용소는 관사(官私)합쳐 4개처]이다. 그 외에도 증상이 외부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까지를 더한다면 실로 1만명은 될 것이라고 1926125일부의 {동아일보}가 보도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경찰부장회의 자문사항 답신서}(19235) [극비]자료에 의하면, 4항목의 [답신사항]이 게재되어 있다. 그 중의 한 항목으로 [나예방에 관한 명령제정의 가부(可否)]가 들어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4. 나예방에 관한 하기(下記) 요령의 명령제정에 관한 가부(可否)

나예방에 관한 명령안 요항

() 의사는 환자를 진단할 때와 사체를 검안할 때는 환자 또는 가족에게 소독 기타의 예방방법을 지시하고, 그 취지를 경찰관서에 신고할 의무를 가진다.

() 나환자가 있는 집이나 나병독에 오염된 집에 대해서는, 의사 또는 해당 관리의 지시에 따라 소독 기타의 예방방법을 행하도록 할 것.

() 경찰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나환자를 요양소에 입소시키거나 또는 일정 지역 이외로의 출입을 금지시킬 수 있다.

() 경찰서장은 나환자에 대해 업무상 병독을 전파할 우려가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할 수가 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나예방에 관한 명령안 요항]에 대해 경기,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황해 등의 각 도의 경찰부장들이 각기 [답신]을 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 경기와 충북 2개소의 [답신]을 살펴보기로 하자.

 

경기

나예방에 관해 명치(明治)403월 법률 제11호로 나예방에 관한 건과 거의 동일한 법령을 정한 것은 조선에서도 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지(內地)에 있어서는 예방에 관한 제반시설 및 비용은 주로 지방단체의 의무에 속해 있으나 조선은 민도(民度)의 관계상 국가시설로 하고 그 비용도 역시 국비로 지불하며 일부분에 대해서는 대정(大正)84월의 부령 제61) [대정(大正)84월 부령(府令)61] [전염병예방령(19156), 제령제2]로 공포된 [동령]의 제22에 정한 [지방공공단체의 의무에 관한 건]을 말한다.({관보}191946일부)

에 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나누어 설명하자면

() 의사가 나환자를 진단할 때와 그 사체를 검안할 때는 환자 또는 그 가족에게 소독 기타의 예방방법을 지시하고 그 취지를 검찰관서에 신고할 의무를 가진다.

의사에게 신고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예방 및 박멸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며, 때때로 이에 의생(醫生)을 가담시킬 필요가 있을 것임.

환자 및 그 가족에게 소독 기타 예방법을 지시해야 할 의무를 의사 의생에게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의 규정을 성실히 행함으로서 실효를 얻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된다.

() 나환자가 있는 집 또는 나병독에 오염된 집에 대해서는 의사 또는 해당 관리의 지시에 따라 소독 기타 예방법을 행하도록 할 것.

나환자가 있는 집 또는 나병독에 오염된 집에 대해 개인으로 하여금 소독 기타의 예방방법을 행하도록 하는 것은 그 시행이 곤란) [부령 제61]의 제2조는 [비용은 부(), 면의 부담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 제4조에는 [22에 의한 , 면의 지출에 대해서는 도()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지방비로 보조할 것]이라고 기술되 어 있다.

하므로 대정84월 제61호를 참작하여 적당한 규정을 정하여 그 비용의 일부는 지방비에서 보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됨.

() 경찰관서장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나환자를 요양소에 입소시키거나 또는 일정한 지역 밖으로의 출입을 금지할 수 있다.

나환자를 요양소에 입소시키거나 또는 일정한 지역 밖으로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은 필요하나, 요양소의 설립 및 경영에 필요한 비용을 내지(內地)의 예에 따라 도()에 부담케 하는 것은 현하(現下)의 사정이 허락지 않으므로 국비로 하고, 환자들이 변상할 수 없는 구호비도 국비로 지출함이 당연하다고 생각됨.

() 경찰관서장은 나환자에 대해 업무상 병독전파의 우려가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 있다.

직업의 제한은 예방상 반드시 필요한 일이나 이로 인하여 자활(自活)이 불가능한 자의 구호비는 지방비로서 지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충북

본 명령은 이를 제정함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조선 나환자 중에는 적당한 구호자(救護者)가 없거나 혹은 발병과 동시에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버림받거나 또는 스스로 이를 부끄러이 여겨 가향(家鄕)을 탈출하여 부랑배회하는 자가 많다. 따라서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자가 적어 점점 더 병독이 전파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양기관으로는 정부가 경영하는 곳은 소록도 자혜의원 뿐으로 그 외에 광주나병원, 동래군 감만리 나병격리원 및 달성군 서면 나병원과 같은 사설 나병원이 있으나 그 설비가 불완전하므로, ()명령과 동시에 강제수용격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설비를 완성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앞에서 소개한 최정기의 {전남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은 이에 언급하여, 1930년대까지의 총독부의 [()]정책에는 [격리, 수용이 보건위생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서 정치적, 사회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즉 일제는 나환자들을 격리, 수용하면서 나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적인 통합을 성취하고, 부랑나환자의 배제(排除)를 통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통제의 근거가 되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감사(感謝)의 처벌}등에는, 이러한 감금체계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잘 지적되어 있다). 이것은 실제로 나환자들 중의 극히 소수만이 격리, 수용의 대상이었고, 이러한 시설을 보완할 정도의 다른 대책들이 없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볼 경우, 지금까지의 통제가 형식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20-21)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총독부의 []정책과 한센병환자의 사회적 통제에 대하여, 동 환자들의 의료와 보호를 총독부에 요구하는 의견들이 많이 보인다. 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동아일보}(19231231일부) [경북 달성에 나병환자 상조회/병 치료와 전염예방이 목적/전 조선에 환자가 2만여명]이라는 표제 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비애와 고통이 많이 있지만 질병보다 더한 비애와 고통이 없으며 질병 중에도 [문둥병]보다 더한 비애와 고통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부모처자에게도 버림을 받고 친척고구(故舊)에게도 배척을 받아 많은 원한과 많은 저주를 가지고 혹은 산비탈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덧없는 생명을 유지하다가 그만 무참히 세상을 버리나니 실로 가련하고 동정할만한 자는 문둥병자이다.

조선에는 2만여명의 문둥병 환자가 있어서 이와 같은 비참한 운명아래 덧없는 목숨을 보존하고 있으되 그들을 구제하는 기관으로서는 외국사람이 경영하는 광주, 대구, 부산에 있는 [나병환자 수용소] 세 곳과 총독부에서 경영하는 소록도의 [수용소]가 한 개가 있어서 1천여명의 환자를 수용하고 그 외 19천여명의 환자는 어찌할 길이 없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되 그들을 구제코저 하는 사람은 별로히 없다. 이에 그 문둥병 환자들은 자기들이 자기들 끼리로 단결하야 가지고 무삼 살길을 찾고저 요사히 대구 나병환자 상조회라는 것을 설립하였다 한다. 그들은 서로 돈을 모아 가지고 치료를 통일하며 또는 서로 돕고 서로 붙들며 무삼 광명한 길을 찾고저 애쓰는 동시에 행동을 삼가서 남에게 전염되지 아니하게 하고저 하는 중인데 그 사무소는 경북 달성군 달서면 내당리에 두고 분투노력하는 동시에 다시 일반 눈물있고 피있는 유지들의 동정을 받아 그 회를 영원히 유지코져 한다 하며 현재 직원으로는 회장·총무·회계 등 5, 6인이 있는데 회무(會務)가 발전됨에 따라 장래에는 조선 각지에 지부를 설립하고 병 치료와 전염예방에 힘쓸터이라더라.({동아일보} 19231231).

 

{동아일보}(1926525) [나병자 수용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사설을 쓰고 있다.

 

나병자 수용에 대하여는 오인(吾人)이 본란(本欄)에서 이미 누차 당국자에게 경고한 바 있거니와 최근 다시 이 문제로 인하야 부산부(釜山府)를 중심으로 경상도 당국자간에 재연(再燃)되여 구체적 구제책을 연구중이라고 하니 이 기회에 다시 오인(吾人)의 진술하여 두는 것도 결코 무용(無用)한 일이 아닌 줄 믿는다……그 병이 전염병인 고()로 독일에서는 근절(根絶)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병은 야만병이라는 별명이 있다. 즉 야만국에나 있을 병이오 문명국에는 없앨 수가 있다는 말이다(중략).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설치하여……일년예산 약6만원, 수용환자수가 241(작년 12월말 현재)에 불과하며……나병환자 2만명 중, 정부의 손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사람이 불과 241명이라니 얼마나 조선인의 생명이 등한시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으며……우리들은 인도문제(人道問題)로 이 문제를 크게 취급함으로서 당국자의 반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19275월의 [도지사회의]에 제출된 의견 중에서도, 경상북도지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의견이 제출되었다. 동 지사의 의견은 [()는 성질상 국가가 구제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현 제도를 운위(云爲)하는 자들이 있어]라는 식의, 극심한 인식결여를 보여주는 것이다. 소록도자혜의원 확장공사에 대한 [소요]사건으로부터 8개월 뒤의 도지사회의이기는 하지만, 참고로 다음에 소개한다.

 

본 도에 현존하는 나환자는 실로 2,000여명에 달하며, 그 대부분이 하층 영세민으로 스스로 치료할 방도를 강구할 자력(資力)이 없음은 물론, 자활(自活)할 길조차 궁한 것이 현실이다. 실제 외국인이 경영하는 대구 제중회(濟衆會)가 구라사업을 확장하고 이를 군부(郡部)까지 연장한다는 계획은 이들 환자들을 현저히 자극하여 통유적(通有的)인 의뢰심을 조장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성질상 국가가 구제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현 제도를 운위(云爲)하는 자들이 있어, 특히 대구 나()상조회는 때때로 도()에 대해 원조를 요구하기도 하고 또는 도평의회에 대해서도 동일한 탄원을 하여……({사이토 미노루(齋藤實) 문서} 3, 고려서림 1990, p.774).

 

19261017일자 {동아일보} [요양비를 좀 달라고 나병환자 탄원/130여명의 나환자가]라는 표제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경상남도 동래군 서면 호곡리 나병환자 상조회 130여명의 나병환자를 대표한 김돈화(金敦化)가 총독부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하였다는데 그들 130여명은 전남(全南)과 기타 나병환자 치료소에 들어가 보려고 여러 곳으로 다니었으나 소록도병원이나 혹은 외국사람이 경영하는 병원은 모두 만원이 되어 거절함으로 할 수 없이 촌촌(村村)으로 구걸을 하는 중 날은 차차 추워지고 겨울살이 망연하므로 이 앞으로 일년동안 살아갈 요양비 6,400여원만 달라는 의미의 탄원이라더라.

 

현재, 서울에 있는 정부기록보존소 소장의 [소록도자혜의원 관계철]의 의원확장문제 일건 문서는 이상과 같은 1922년대 후반의 세태(世態) 가운데서 입안, 작성된 것이다.

소록도자혜의원이 당시 [도립(道立)]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총독부와 전라남도 당국과의 왕복문서, 명령, 보고문서 등이다. 당시의 전라남도 지사는 장헌식(張憲植)으로 1926년 당시, 조선 13개도 중에 충북, 충남, 함북, 강원 및 전남의 각 도지사가 조선인이었다.

[소록도자혜의원확장 일건문서]의 모두(冒頭) [대정(大正)14(1925) 618, 전라남도 지사]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게 보낸 [소록도자혜의원 수용인원 증가 및 그 경비(經費)에 관한 건]이다. 이 문서에는, 조선총독 사이토(齋藤實)의 사인(sign)과 함께 정무총감과 경무국장 등의 날인(捺印)이 보인다. 동 자료를 다음에 게재해 둔다.

 

관하(菅下) 소록도자혜의원 확장의 건에 관해서는 상신(上申)한 바와 같으며, 동원에는 작년에 환자수용을 목적으로 건축한 가옥 6(조선식 초가, 각 동 888, 2동에는 5합의 변소부속, 5동에 각 10명을 수용, 1동은 중증환자실에 충당할 예정)이 있어, 이를 사용할 경우 새로운 환자 50명의 수용이 가능하며, 그 경비는 환자에 직접 필요한 별지 내역과 같습니다.

직원은 현재 인원으로 운영 가능하며, 수용인원 50인 증가의 건이 승인되면 금년 7월부터의 실시하려 하니 예비금으로부터 별지 금액의 지출을 상신하는 바입니다.

 

라 하여, [소록도자혜의원 수용정원 증가에 따른 경비조사서] [일금 6,15130]을 계상하고, 그 내역으로 다음과 같은 표를 제시하고 있다.

인원

1인당 하루 경비

7월∼3월의 연일수

연인원

비 고

50

 

 

 

 

 

44.9

 

 

 

 

 

274

 

 

 

 

 

13,700

 

 

 

 

 

1인당 하루

약품 및 주사재료비 5.4

식비 23.9

피복비 2.4

고용인 급료 등 13.2

44.9

(과거 3년 간의 평균조사)

9평이 안되는(29) 목조 초가지붕의 숙사에 10명의 한센병환자를 수용하고, 하루에 1인당 449(그 중에 식비 약 24)으로 생활하는 셈이다. 2개 동에 다다미 반장 넓이의 변소가 하나. 이것이 당시의 소록도자혜의원에 수용된 환자들의 생활이었다.

다음 표와 같이 하나이(花井)원장은 수용정원을 넘어선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나가시마(長島) 사건]을 일으킨 미츠다(光田)원장 하에서의 나가시마 애생원의 19368월 당시의 상황과 비슷하다. 1925년과 26년에는 실로 수용정원의 2배나 되는 환자를 수용하고 있다.

년도별

수용인원

실수용인원

과감률(%)

1920

100

95

95

1921

100

121

121

1922

100

171

171

1923

100

196

196

1924

125

195

156

1925

125

241

193

1926

125

249

199

다음해인 1926225, 총독부 경무국장은 동 내무국장 앞으로 [건명·소록도자혜의원 부설매수에 관한 건]을 발송하고 있다. 당시의 경무국장은 미츠야 (三矢身宮松), 내무국장은 이쿠타(生田淸三郞)이다.

총독부의 [()]정책을 주관한 것은 경무부 위생과로, 과장은 세키미즈(關水武)였지만 같은 과의 기사인 [니시키(西龜)]도 도장을 찍고 있다. 이 니시키가 바로 니시키 산케이(西龜三圭) [소록도자혜의원 부설확장에 관한 건]의 문서에는 일관되게 도장을 찍고 있다. 그 후, 니시키(西龜)19304월에 총독부 경무부 위생과장이 임명되고, 재단법인 조선나예방협회를 설립(19321227)하여 동() 협회의 상무이사를 겸임한다.

[소록도]요양소 대확장계획(193339)을 세우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26225일자로 내무국장 앞으로 보내진 경무국장 문서에는 [대정(大正) 15년도의 소록도자혜의원 부설매수비로서 일금 8,194원을 계상하며, 이는 별지 내역과 같으므로 예산이 확정된 이상 신속히 매수토록 할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별지에 다음과 같은 내역을 첨부하고 있다.

 

소록도자혜의원 부설(敷設) 매수(買收) 8,194

확장지역

1. 확장예정지

원내 소재의 동서(東西)지역으로 삼면 바다에 접하고 한 면만이 원() 부지와 경계함.

2. 면적 28() 5() 2()

임야 64,928

() 6,092

12,340

대지 792

비고 현재 민가 5

3. 매수가격

() 3,655.20

1,851.00

산림 및 원야(原野) 850.00

대지 87.60

6,443.80

4. 부속 제비용

묘지 및 분묘 30개소 이전료 1개소 이전료 30

45 900.00 (미발견 예상 10여개소)

가옥 5 1채 매수 70 난외(欄外)

350.00

이전료 1100(이전료를 제외하고 매수비 170원으로 할 것)

500.00

1,750.00

 

이틀 뒤인 227, 총독부 경무국 위생과장은 전라남도 경찰부장 앞으로 [의원확장 예정부지에 관한 건]이라는 조회서를 보내, 전기(前記)의 임야, , 대지, 민가 5채의 소재위치를 도면에 표시하여 급히 2통을 송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동년 319, 전라남도 경찰부장은 경무국 위생과장에게 소록도자혜의원에 관한 확장예정 부지도면 2통을 첨부하여 회신한다. 그리고 계속하여 322, 경무국 위생과장은 건설과장에게 [소록도자혜의원 확장에 필요한 예정부지 도면]을 지급으로 송부하고 있다.

그 후, 몇 통의 통첩 등이 총독부 관계부서간 혹은 총독부와 전라남도 당국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들 문서는 모두 행정당국만이 알도록 [비밀]로 취급되어, 일체의 내용은 지역주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라남도 지사는 1926624일부(전남경위(警衛)10)로 경무국장 앞으로 다음과 같은 문서를 발송한다.

 

대정(大正)15년 영선(營繕) 공사비에 관한 건

330일부 경()196호로 좌기(左記) 금년도 영선공사비 예산배포의 통첩이 있어, 그 실시에 관해 목하 준비중에 있으나, 부지시가에 관해 예산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예정평수 가운데서 장래 의무(醫務)수행상 비교적 필요치 않은 지구를 적당히 감소시켜 매입하려하니 승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좌기(左記)

1. 소록도 자혜의원 부지매수비 8994()

 

이 전라남도 지사의 [조회문]에 대해, 총독부 경무국장은 626일부로 [지급(至急)·비()]로 날인하고, [소록도자혜의원 부지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문서를 전라남도지사 앞으로 발송하고 있다.

 

624일 전남경위(警衛) 10호 소록도자혜의원 확장부지에 관한 건에 관해 조회한 바, 하기 사항을 지급 승인코져 통보합니다.

()

1. 현재시가 예상(각 지목별)

2. 본년도 예산으로 매수할 계획의 상세(매수할 가능성이 있는 토지면적과 매수할 가능성이 없는 토지면적을 약도로서 명시할 것)

 

19266월 시점(時点)의 전라남도 경찰부장은 [카미오(神尾)]라는 일본인이다. 동 도()의 경찰부 위생과장은 조선총독부 도경시(道警視)인 구자환(具慈環)이었으나, ()경시는 동년 72일의 사령(辭令)으로 [전임(專任) 보안과장]에 임명되고, 그 대신 전라남도 경찰부위생과장으로는 조선총독부 기사(技師)인 타카하마(高浜)가 부임한다. 그리고 629일부로 도경부(道警部)였던 코가(古賀國太郞)가 조선총독부 경시(警視)로 승진하여, 72일부로 전라남도의 경찰부 경무과장으로 부임한다(조선총독부 관보에 의함). [위생경찰]이라는 말처럼, 사회활동에 관계되는 경찰활동은 식민지 조선의 []정책이나 대응에도 깊게 관여되어 있었다.

총독부 위생과는 총독부 경무국에 속하여, 과원들의 대다수를 경시(警視), 경부(警部)와 같은 경찰관들이 점하고 있었다.

한편, 전라남도 지사 장헌식(張憲植)1926814일부로 [의원면직(依願免職)]된 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어, 년봉 2천원의 수당을 하사받게 되며, 대신해서 [충청남도 지사 정5(正五位) 석진형(石鎭衡)]이 전라남도 지사로 임명된다. ()지사는 서울의 법학전문학교 교수에서 관계(官界)에 입문한 인물로, 도평의회 의원 중에는 법전(法專)시절의 학생들이 있었다. 사이토(齋藤實) [문화정치]라는 미명아래 장헌식·석진형의 양()지사, 구자환 전임(專任) 보안과장, 후술하는 고흥군수 중추원참의 김정태(金禎泰) , 상당수의 조선인들을 임용하여 겉치레만의 [지방자치]를 운영했다. [문화정치]란 민족운동을 의도적으로 분단시켜 대립의 쐐기를 박기 위한, 조선인 상층부와 지방유지(명망가)들을 통치기구에 끌어들이는 정책이었다.

 

소록도자혜의원확장, 부지매수 문제에 관해 전라남도 지사는 816일부 [전남경위비(警衛秘) 2506]로 경무국장 앞으로 매우 구체적인 시행내용계획을 보내 승인을 요구한다.

816일이라면 석진형이 전라남도 지사에 임명된 이틀 뒤의 일이다. 긴 문장이므로 요점만을 소개한다.

[소록도자혜의원 부지에 관한 건]은 전술한 경무국장 발 [626일부 관계번호문 제2397]의 회답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래 표가 제시된 [현시가 예상(각 지목별)]이다.

 

지목별

평당단가()

예 산

임야

대지

131

6,000

1,500

111

예상시가

임야

대지

353 6,150

2,303

1,119

이는 총독부가 1926년도 의원확장 매수비로 전라남도 지사에게 제시한 땅값에 비해 고가(高價) [매수예산]8,19380전이므로 매수하는 토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816일부의 [전남경위비(警衛秘) 2506] 신보(申報) [2.금년도 예산으로 매수할 계획의 상세] [(1)매수예상 면적별]의 항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금년도에 매수할 대상]의 조표(調標)를 제시하고 있다.

 

본 의원 확장예정지 선정에 관해서는, 1보로서 대정(大正)12(1923) 110일부로 전남경위비(警衛秘) 59호로 신보(申報)한 이후, 산림을 밭으로 개간하는 등, 1지목의 변경으로 인한 지가의 변동 및 그 이후의 토지 점등(漸騰)과 같은 자연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매수예산액이 현재의 시가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므로, 좌기(左記)와 같이 매수지역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실정임

지 목

기 타

매수예산

금년도에 매수할 대상

 

예정면적, 기타

금 액

매수면적

금 액

 

 

임 야

()

()

대 지

묘 지

분 묘

가 옥

()

64,928

6,092

12,340

792

30개소

45개소

5

()

850.000

3,655.00.

1,851.00.

87.600

900.000

 

850.000

()

29,441

4,049

15,139

158

7개소

11개소

4

()

1,041.710

2,490.540

3,542.530

17.480

360.000

 

741.540

 

합 계

 

8,193.800

8,193

8,193.800

 

토지매입시 일반매수에 잉여분이 생길 경우는 별지도면 내에

표시한 답()을 매수할 것

[전남경위비(警衛秘)2506]신보는, 이와 함께 매수계획으로서 [매수착수준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본 의원의 부지매수문제에 관해서는 동원 창설당시 및 대정(大正)12224일부의 전남경위비 제14호 보고와 같이, 금번 확장준비 조사시에는 상당한 분의(紛議)가 야기될 상황에 있음을 감안하여 아래와 같은 방법에 의해 최대한 신중하게 처리할 것.

1. 매수담당자 및 그 운동방법

매수에 있어서는 소록도병원장의 직접교섭을 피하고, 관할 군장(郡長) 및 경찰서장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방법에 의해 각 관계자의 양해를 구하도록 한다.

그리고 다음의 4항목을 들고 있다.

(1) 매수에는 제일 먼저 관계면장, 구장(區長) 기타 유력자의 양해를 얻어 토지 기타의 소 유자를 설득하고, 그 승낙서를 받아둘 것.

(2) 위의 승인을 얻으면 즉시 측량을 실시하여, 지목, 면적, 수량과 소유자의 주소, 성명 등 을 정확히 조사할 것.

(3) 실측(實測)과 동시에, 한편에 있어서는 면장, 구장 기타 관계자 중에서 신망이 두터운 자를 골라, 매수토지를 평가케 할 것.

(4) 매수평가에 근거하여 즉시 매매계약을 체결할 것.

그리고, [매수상의 구제책]으로서 다음의 두 가지 점을 제시하고 있다.

[토지매수가 원인으로 특히 손해를 입은 자에 대해서는 정상(情狀)에 따라 그에 상당하는 구제방법을 강구해야 하며, 우선 다음 사항을 실행한다.

(1) 분묘를 이전하는 자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 사설묘지를 허가한다.

(2) 토지매수로 인하여 경작지를 잃는 등, 생활상의 손해를 입는 자에 대해서는 소작지 또 는 부업을 제공하는 등, 관할군수로 하여금 상당부분 알선토록 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계방법]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본 건 매수 착수시부터 사건의 수행완료까지 다음의 방법에 의해 경계한다.

(1) 임시경찰관 출장소를 설치하여 일본인 순사1, 조선인 순사 1, 2명을 배치할 것.

(2) 전항을 위해서 필요에 따라서 경계요원을 증파(增派)할 것.

 

이상의 전라남도 지사신보 [816일부 전남경위비 제2506]에 대해 총독부는 820일자로 [소록도자혜의원 부지매수의 건]을 경무국장(미츠야)과 내무국장(이시구로)의 이름으로 전라남도 지사에게 통지하고 있다.

 

금년 624일부 전남경위 제10호로 위 제목에 관해 조회한 바 있으나 우()는 불가피한 사항으로 인정되므로 금년 816일부, 전남경위비 제2506호 신보에 근거하여 매수할 것을 통첩함.

덧붙여 매매계약이 확정되는 대로 그 상황을 즉시 보고하기 바람.

이유

금년도 영선비, 신축 및 설비비, 지방청 신축 중 소록도자혜의원 부지매수(확장)비로서 일금8,994원을 계상한 바, 본 매수비의 예산편성 후 해당 지목 중 산림을 개간하여 밭으로 변환된 것이 약 4,000여평 있으며, 일반지가(地價)도 다소 앙등한 결과 당초의 예정지 전부를 매수하기 위해서는 다시 3,000여원이 부족할 것 같으므로 별지 도면과 같이 총면적 84,152평 가운데 의원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 48,787평을 매수하고, 실제 매매계약의 결과 매수비 예산에 잉여분이 생길 경우에 논과 밭 약 1,200평을 매수토록 하며, 금번에 매수하려는 부분은 의원으로서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장래에 지가가 앙등할 우려가 있는 논, 밭 등의 대부분을 매수하기 위해서도 적당한 조치라고 인정되므로 본안(本案)과 같이 승인함.

 

[승인]통지가 전라남도 지사 앞으로 발송된 동년 825일부터 약 한달 뒤인 919, 전라남도 경무과장은 동도(同道) 경찰부장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보를 발신하고, 다음날인 20일 오전 1시 반에 동() 부장이 그 전문을 접수하고 있다. [소록도 소요사건]을 알리는 최초의 [일보(一報)]이다. 전보 송달지에 쓰여진 것은 카타카나(假名)로 된 문장이나, 통상문자로 바꾼 문장의 [복사본]이 총독부에 남아있다. 복사본에는 [극비]도장과 함께, 경무국장 미츠야(三矢), 위생과장 이시카와(石川), 기사 니시키(西龜)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다. 통상문자로 고쳐진 [복사본]을 아래에 소개한다.

 

수신·전남 경찰부장, 발신인·전남 경무과장 ―

지난 8일 오후8시 소록도의원 확장문제에 대해, 병원장은 대정(大正)11년 확장계획 당시에는 절대로 확장계획이 없다고 부인해 놓고 지금에 와서 이를 실시하게 된 것은 원장이 도민(島民)들을 기만하는 것이라 칭하여, 도민 약 230명이 병원을 내습했으나, 내도(來島) 중의 경찰관의 제지로 원장은 무사히 피난할 수가 있었으며, 관할서장은 경상(輕傷), 순사 한사람은 중상(목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음)을 입었으나, 도민들의 진의(眞意)는 배상조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 판단되며, 오늘 아침 부터50명의 경찰관을 파견하여 경계 중에 있으나 오늘은 무사히 지나갔음.

본 건에 대해 절대 반대를 외치는 도내(島內) 120호 중, 40호 이외에는 부화뇌동하는 자들임. 그들과 당국의 조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으나 아직 도민들에게는 내시(內示)하지 않았으므로, 이번을 계기로 신속히 군수 면장 등을 통하여 내시(內示)하는 것이 득책(得策)이라고 인정되므로 곧 실행할 예정임.

이번의 소요범인(10)은 이번 기회에 검거하고 싶으나, 당면 문제로서 계획의 실행, 병원 및 부속삼림 등에 대한 위해(危害)를 야기하여 장래 병원운영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므로 즉각 검거(주모자 약10) 여부에 대한 지시를 바람.

본 건은 아직 경무국에 보고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귀관이 보고해 주기 바람. 경무과장

 

이 전문을 919일 전남 경무과장이 발신한 이후의, [의원확장문제, 소록도 소요사건]에 대한 전라남도 당국자와 총독부와의 교신, 보고문, 조사의뢰문 등이 [소록도자혜의원 관계철]에 수십통 수록되어 있다. 또한 동 사건은 922, 105일자 {동아일보}에도 보도되었다.

각기 내용이 부정확하여 예측과 편견에 근거한 기술도 엿보이나 그러한 점을 감안하면서 기록된 [자료]에 따라 [사건]의 추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920일부 [전남보(全南保) 3729]는 전라남도 지사가 총독부 경무국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이다. 건명은 [소록도자혜의원 확장문제에 대한 소요사건]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총독 사이토(齋藤實)의 미노루()라는 모필(毛筆) 사인(sign)과 함께 정무총감 아사쿠라(淺倉), 경무국장 미츠야(三矢), 보안과장 타나카(田中) 등이 날인하고 있다.

전라남도 지사가 조선총독에게 보낸 [소록도자혜의원 확장문제와 소요사건에 관한 건]의 보고는 전라남도 용전(用箋)으로 8, 15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동 문서에는 총독을 비롯하여 경무, 내무, 재무의 각 국장, 경무, 보안, 위생, 사회, 사계(司計) 등의 각 과장의 공람인이 날인된 [극비]문서로, 조선총독부 위생과 [위문(衛文)3832, 15.9.27]의 접수 스탬프가 찍혀있으며 [전보(電報)보고에 대한 상보]라고 첨서(添書)되어 있다.

내용항목은 [A 소요전의 상황][B 소요사건의 상황][C 소요후의 상황]3항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보고의 대부분은 [A 소요전의 상황]이 점하고 있다.

보고는 우선 관계면장 및 관계 주민대표 초치간담의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1)일시는 916일 오후3(2)장소는 소록도를 관할하고 있는 고흥경찰서내 (3)[관민(官民)회견]으로 고흥경찰서장, 전남도경찰부 위생과 근무의 코바타케(小??)경부, 고흥군수 중추원참의 김정태(金禎泰), 도양면장, 금산면장, 소록리 구장, 소록리 유지 박맹학(朴孟學), 주순기(朱舜基), 김병길(金炳吉), 고흥읍내 유지 이치빈(李致彬), 도양면 유지 이치범(李致範)11명이다.

[회견상황]은 먼저 경찰서장, 경찰부원 코바타케 경부 및 고흥군수의 설명이 있은 뒤, 병원확장을 위해 매수할 토지의 매수방법, 보상구제 방법 등에 관해 아래의 요항이 제시되었다.

 

(1) 매수토지의 매매가격은 시가를 기준으로, 토지매매 평가위원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2) 매수지역 내의 묘지개장(改葬)에 대해서는 상당액의 이전료를 교부하고 사설묘지를 허가한다.

(3) 매수지역 내의 독립가옥에 대해서는 평가의원이 정하는 상당(相當) 대가 및 이전료를 교부한다.

 

등의 7항목이다. 이에 대하여 소록리의 주민 측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소록리 구장 김술이(金述伊)……본 확장문제는 국가의 방침이므로 적절한 것이라고 믿으나 소록리민들이 감당해야 할 희생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정(大正)6년 당시의 병원을 설립할 때에 장래의 확장은 절대로 없을 뿐만 아니라 관계 부락민들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성명(聲名)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확장한다는 것은 실로 의외의 일이며, 따라서 찬동할 수가 없다고 주장.

소록리 유력자……동포(同胞) 중에서 많은 나환자들이 입원하려고 본도(本島)에 들어오고 있으나 병원으로부터 환자가 만원이라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실망하여 본 도내를 방황하면서 음식물을 구걸하는 자가 끊이질 않는다. 이를 목격할 때 본인은 실로 동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사재(私財)가 있다면 이를 구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나 가난한 우리들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도민 전체를 생각할 경우, 본도의 농산물은 연액(年額)으로 12,000, 해산물이 약 40,000원 정도로, 현재 확장하려는 지역의 생산이 그 1/3에 상당하므로 본 도민 800명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당국은 이점을 충분히 동정하여 경솔한 확장 등을 하지 말기를 바라며 이상의 이유로 찬동할 수 없다고 주장.

 

소록리 구장과 소록리 유력자가 [소록도자혜의원 확장, 토지매수]에 관해 찬동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다.

1917년 병원이 설립되었을 때, 장래 확장 등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며, 도민에 대하여 불안을 조성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하지 않았는가.

② 다수의 나환자들이 입원을 위해 섬으로 들어온 뒤, 병원으로부터 만원을 이유로 거절당함으로서 소록도내를 방황하면서 걸식을 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

③ 섬의 생산고는 농산물이 연액(年額)으로 12,000, 해산물이 약 40,000()으로, 이번에 확장하려는 지역의 생산이 그 1/3에 상당하므로, 도민의 사활문제가 달려있다는 점.

 

이러한 소록리 구장과 소록리 유력자들의 주장에 서장, 군수, 코바타케 경부, 면장 등은 [교대로 도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나, 매수하려는 지역이 협소하다는 것을 지도를 제시하면서 설명하고, 따라서 생산에 크게 관계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했으나] 섬의 대표자들은 본 건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대한 일로 자신들의 독단으로 해결할 수가 없으므로, 일단 섬으로 돌아가 도민들에게 이 내용을 잘 전달하고 도민의 이해를 구하여, 평온한 가운데 일이 진행되도록 노력할 것을 언명했다. 여기서 일단 간담회를 끝낸 뒤 해산하고, 오후의 도민들의 동정을 조사하기 위해 6명의 경찰관을 소록도에 배치했다.

 

917 [도민들에게 간유(懇諭)한 상황]에 관해서는, 소록도 소록리 [개량서당]에 도민 150여명을 모아 고흥경찰서장 오이카와(及川正人)와 고흥군수, 기타의 사람들이 병원확장과 그에 따른 토지매수 등의 취지를 간곡히 설득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대정(大正)6(1917)에 본원을 설치할 당시에는 장래 확장치 않겠다는 취지를 천명해 놓고 금번에 돌연 확장하려 하는 것은 원장의 간책(奸策)에 의한 것이므로, 원장이 본도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극력 반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격앙하는 자들이 있으므로] 서장, 군수 및 코바타케(小??) 경부는 [본 확장문제는 본부(本府) 및 도()에서 계획한 것으로 병원장은 절대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득했다. 그러나 도민들은 다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다.

 

그렇지만 금번의 확장지역은 본도민의 생활상 가장 중요한 토지 및 해안에 속하는 곳으로 이를 매수할 경우, 본도민의 대부분은 금후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므로 확장문제에 대해서는 절대로 반대한다.

 

이에 장내가 소연(騷然)해져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으므로, 서장들은 오후 530, 좀 더 숙고할 것을 권유하고 해산시켰다. 다음에 [B 소요사건의 상황]에 관해, 전라남도 지사가 조선총독에게 보낸 [보고서]를 살펴보기로 하자.

918, 도민들은 각 부락에서 대책을 협의하고 있었으나, 오후 8시쯤 소록리의 박성모(朴聖毛30)가 조선식 나팔을 불어 도민 250여명을 모은 뒤 스스로 [수괴]가 되어 도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번의 확장문제는 원장의 간책에 의한 것으로, 지금부터 원장에게 그 책임을 물어 화형에 처해야 한다.

 

그러자 모여있던 도민들이 부화뇌동하여 각자 몽둥이, 대나무 막대 또는 돌을 휴대하고 병원장 관사에 몰려가려 했다. 고흥경찰서장 오이카와는 부하직원 4명과 함께 이를 저지하고, 경찰부에서 파견된 코바타케 경부 외 2명은 원장관사의 경계에 임했다. 도민들이 내습했을 때는 하나이 원장 등이 관사로부터 안전지대에 피난한 뒤였다.

 

군중들은 이들 경찰관들에 10수회에 걸쳐 육박, 폭거의 잘못됨을 논하고 해산을 명하는 경찰관들의 무저항적이고 평온한 가운데 해산시키려는 태도를 보고, 해산하기는커녕 몽둥이 등으로 경찰관을 타박하거나 투석하는 등의 폭행을 감행하여, ()와 같이 경찰관에게 상해를 입히고도 계속 폭거를 계속했으나, 경찰관들이 극력 온화한 수단으로 해산에 임한 결과, 군중의 감정이 점차 진정되어 결국 오후 11시에 해산했다.

 

경찰관 부상자로는 고흥경찰서장이자 도()경부인 오이카와(及川正人), 고흥경찰서 형사인 순사 야스다(保田竹一郞), 동도(同道) 순사 한양근(韓痒根), 동 순사부장 야와타(矢羽田儀市), 동 순사부장 이와나가(岩永眞一)5명이, 5일에서 2주간의 상해(傷害)를 입었다고 전라남도 지사가 조선총독에게 보낸 925일자의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태 하에서 도민들의 재거(再擧)를 염려한 오이카와 서장은, 부하직원 17명을 소록도에 비상소집하여 경계토록 응원을 구하고, 91920명의 직원의 내도(來島)를 기다리며 도민검거를 준비했다. 또한 총독부 및 검찰당국과 협의한 결과, 도민 검거를 위해 관할 순천지청의 테라다(寺田)검사 및 장흥지청의 무라이(村井)검사를 현지에 출장 보냈다. 그리고 [수사의 만전을 기하기 위해] 20일에는 다시 21명의 응원직원을 증파함과 동시에, 수사에 관한 직원들의 지휘를 위해 전남경찰부 보안과장 구자환(具滋環)이 소록도로 파견되었다.

테라다, 무라이의 두 검사는 93일 현지에 도착하자 즉시 검거에 착수하여 아래의 10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급하고, 그 날로 신병을 순천으로 호송, 순천경찰서에 유치했다.

유치된 [죄명] [성명·연령]은 다음과 같다.

[소요상해 박성모(朴聖毛, 30), 소요상해 박월반(朴月半, 37)

소요 황순(黃順) 즉 한만서(韓万西, 36), 소요 강태선(姜泰先)

소요 양생(梁生) 즉 장판옥(張判玉, 26), 소요 박복한(朴福汗, 65)

소요 주요기(朱料基, 30) 소요 임풍암(林豊岩, 29)

소요 장필기(張必基, 27)

장판옥(張判玉)은 고흥군 도양면 봉암리이나, 그 이외는 동군 금산면 소록리 거주로, 직업은 모두 농업이었다.

 

913일부 {동아일보}(석간으로 발행은 하루 전인 21) [소록도민 천여명 경관대와 충돌 난투/총독부영(府營) 나병원확장을 반대하려고 천여도민이 경관대와 충돌하여 난투/양편 중경상자 30]라는 표제로 이 사건의 첫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기사는 상당히 과장된 내용이다. 동 신문은 929일에 사건의 속보(續報)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소록도사건 상보(詳報)/근린경찰과 도경찰부 활약(1926929)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소록도에 있는 총독부 부립 나병원은, 대정(大正)5(1916)에 창립되어 매년 8만원의 경비로 나병환자 250명 가량을 수용 치료하였었는데 금번에 전라남도 도청관리로 변경됨을 따라 확장하는 동시에 500명 가량의 환자를 수용하게 됨으로 이전의 병원은 협착할 뿐 아니라 부지도 부족하므로 그 곳 주민의 소유인 전답과 산야(해안은 포함치 아니함) 15정보를 매수하려고 군수 왕종성(王宗性)씨와 경찰서원 7,8명이 출장하여 매수하려고 누차 교섭하였으나 도민들은 경지와 임야를 팔아 넘기는 것은 생활을 위협하는 것은 무론 설상가상으로 위생상으로도 매우 위험하다고 반대하다가 결국 경찰대와 지난 19일에 충돌하여 경찰 측에 6,7명의 중·경상자를 내고 주민 측에서도 한 명의 경상자를 내는 일대 난투가 있었다. 이 급보에 접한 순천, 보성, 여수, 벌교 각지의 경찰서에서 응원 순경 7,80명이 와서 진압하고 만일을 고려하여 엄중한 경계를 하고 있으며, 경찰부로는 구()경시, 검사국으로는 테라다(寺田)검사가 출동하여 내용을 조사하는 동시에 조정하기에 노력하여, 근근(近近)히 해결될 서광이 있다더라.

 

조선총독 앞으로 발송한 102일부의 전라남도 지사의 [보고]는 부지매수 진행상황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보고 후 927일까지 매수지역의 측량을 마쳤으므로 다음날인 29일 하기(下記)의 자들을 토지평가위원으로 선정하여 각각 개별적으로 평가했으나 면장 이하 도민대표 등은 모두 자기의 입장상 매우 고가(高價)로 평가하여 예산에 다액의 차질을 빚게 될 상태임으로 거의 일주야(一晝夜)에 걸쳐 간담협의를 한 결과 한참만에 도민들의 양해 하에 의견의 일치를 보아 예산범위 내에서……실행 가능하게 되어 즉일로 토지매매수속에 착수하여 자()에 대체로 문제가 해결되어 부재자 10명으로 제외한 기타 토지소유자 전부의 토지매매 승낙서를 제출 받았으며 부재자들도 금명일(今明日) 중에 종료될 것임(본 매매의 상보는 별도 제출함).

고흥군속(郡屬) 우에다 켄지(上田憲志) 도속(道屬) 야마네 코오사쿠(山根口作)

금산면장 장남장(張南將) 도양면장 신내우(申乃雨)

소록도 유력자 주순기(朱舜基) () 장두천(張斗千)

이상과 같은 상태로 소록도자혜의원에는 경찰관 4명을 남겨 당분간 도민들을 관찰하기로 하고 나머지 자들은 920일까지 전부 철수했다.

 

{동아일보}(1926105일부) [민토(民土)는 전부 매수, 주동자 11명은 송국(送局)/도민들의 전답은 병원에서 사고 주동자 11명은 검찰국으로 보내/소록도사건은 여차(如此) 낙착]이라는 표제 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르뽀〓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나병원 확장문제로 경관과 도민 사이에 충돌까지 있었다 함을 보도하였거니와 그 후에 당국자와 도민 사이에 교섭이 있은 수 겨우 동 병원에서 소용될 부지 중 논은 매 두락(斗落)200원 밭은 매 두락 평균 20원 가옥은 매호에 이전비 100원씩에 사게 되고, 그 당시 충돌사건의 주동자와 인정되어 고흥경찰서에 검거되어 취조를 받고 있던 박성모 외 10명은 몇 일전에 순천검사국에 송검되었다고 한다(고흥).

 

테라다(寺田) 검사는 순천지청에 귀청 후 구속자 11명을 다시 취조한 결과, 그 중 2명을 석방, 9명은 구속한 채 102일 광주지방법원으로 송검, 예심청구 없이 104일자로 [소요][소요상해]의 죄명으로 기소하고 다른 피의자 20명을 기소유예(18), 불기소(2) 처분했다.

전남보 제372(19261113)로 조선총독 앞으로 전라남도 지사가 보낸 [소록도사건 공판에 관한 건)에 의하면, 1112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각 피고에 대한 판결언도가 있어, 박월반(37)에게 징역6개월, 박복한(65)에게 징역8개월(2년간 집행유예)이 언도되고, 기타 6명에게는 각각 징역6개월(2년간 집행유예), 김술이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사의 [신보]에 의하면 [해당 피고들은 박월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불평을 주장하는 자가 없이 언도를 시인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박월반은 [불평을 주장]했기 때문에 집행유예 처리되지 않았는지, 자기 자신만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지 못하고 실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불평을 주장한 것인지는, 이 전라남도 지사의 [신보]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1928320, 총독부 경무국장은 각 도지사 앞으로 [소록도자혜의원 수용환자증가에 관한 건]을 통지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전라남도 소록도자혜의원은 소화(昭和)2(1927)에 새롭게 환자 200명을 수용하기 위한 병사 신축을 완료함으로서, 소화3년에는 부랑 나환자중 병독전파의 우려가 가장 많은 200명을 수용할 예정으로…] 소록도 자혜의원 확장공사에 따른 토지구입 등에 대한 도민들의 반대투쟁은 총독부와 전라남도의 권력에 의해 완전히 진압되었으며, 이는 5년 후인 19333월의 조선나예방협회에 의한 전도(全島)매수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I 격리정책의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