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지배와 한센병 


식민지지배와 한센병

--------------------------------------------------------------------------

1 방랑하다 객사한 한센병 환자들

--------------------------------------------------------------------------

 일본 통치하의 식민지 조선에서 방랑하다가 길가에 쓰러져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는 엄청난 수에 달했다. 당시 조선에서 발행된 {오오사카 아사히()신문·조선판}에는 다음과 같은 [표제]의 기사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하층농민은 여전히 밑바닥 생활/평안남도 도내에 초근목피자()5,000(1933530)

 [하층농민들은 여전히 궁핍의 밑바닥에서 허덕이고 있으며, 특히 춘궁기에 들어서는 매일 매일의 먹을 것에도 궁하여, 초근목피를 상식()으로 호구지책을 삼는 궁민()이 도내에 5000호 이상에 이르며특히 산간부 궁민들의 상황은 참아 눈뜨고 보기 힘든 참상을 보이고 있다]

팔려가는 조선의 소녀/50원에서 100원에 카페, 식당, 음식점 등으로(1932617일자)

 [가련한 조선의 소녀들이 팔려 간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하여 부내(ݤҮ)의 영세민 계급의 딸들이 생계 때문에조금이라도 일본어를 아는 소녀나 예쁜 소녀들은 중개인들이 소개소의 문전에서 기다리다 카페나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

궁핍한 농촌의 기발한 식료()/산성 점토로 공복을 메운다/탈색공업의 원료(193272).

 [최근 총독부 경무국 앞으로 강원도에서 작은 소포가 배달되었다설명서에 의하면 이는 불황의 중압에 허덕이는 농민들이 모든 식료가 동이 난 결과, 단지 공복을 채울 목적만으로 먹기 시작한 유일한 산(ߣ)의 식료임이 알려져, 새삼 그 궁핍의 심각함을 실감케 한다]

 

 신문이 보도하고 있는 기사뿐만이 아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하는 월간지 {조선}19213월호에는 총독부 내무국 제2과의 야마나(ߣ٣) [조선의 행려사망자()-공시된 비참한 사실]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1921년이라면 조선총독 사이토() [문화정치]가 시작된 시기에 해당한다. 또한, 소록도자혜의원에서는 하나이()가 그 해 6월에 2대째 원장으로서 부임한 해이기도 하다.

 

 병을 얻었으나 치료의 방법이 없다거나 또는 먹을래야 먹을 것이 없고 입을래야 입을 것이 없는 방랑의 신세가 되어 결국 산야(ߣ)나 길가에 쓰러져 인척()이나 고구(ͺ)의 간호도 받지 못하고 홀로 덧없는 인생행로에 종언을 고하는 자들이 해마다 거수()에 이름을 볼 때이에 본인은 스스로 이 임무에 임함으로서 이 비참한 사실의 계수(ͪ)를 조사하고 각종의 사상()을 점검하여 가련한 하급자의 세태를 지실()코저 한다.(중략)

 대정()9(1920)의 관보등재된 행려사망인의 공시수는 놀랄만한 다수()로서 실로 총수 2,160명을 헤아린다. 여기서 말하는 행려사망인이란 사망당시에 친인척이나 아는 이가 없어 인수할 사람이 없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행려사망인 중에서도 당시 인수인이 있어 공시되지 않은 수는 물론 우()의 숫자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p.114-15).

 

 야마나(ߣ٣) {조선}지에 이와 같이 기록하고 [행려사망인의 공시수],[사인과 남녀별],[사망자의 연령과 성],[사인()과 연령],[사인()과 월별],[사망과 장소],[사망자의 소지금품], [공시() 수단과 인수인],[행려병자 수용소]9항목에 관한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물론, 야마나(ߣ٣)의 기술()은 한센병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며 기간도 19201년간에 한정된 것이다. 조선의 한센병자 행려사망자(객사자 중 인수자가 없는 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후술하나 여기서는 우선 야마나(ߣ٣)가 쓴 {조선}지의 내용을 몇몇 소개한다

인별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

합계

    23

  1.745

     3

  1.771

    12

   377

 

   389

합계

    35

  2.122

     3

  2.160

 [옆 표에 따라 그 남녀수의 비율을 보면, 100명중 남자가 약82명 여자18명의 비율이다. 방랑자중 여자의 비율에 적은 것은 어떠한 원인에 바탕하는 것일까?이들 사망인의 대다수, 아니 거의 전부가 별도로 기술하는 바와 같이 모두 곤궁한 처지에 있는 걸인의 부류에 속하는 자들이다. 임시호구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조선 내의 인구가 1,726만여명이라 하므로 인구 1,7000명에 대해 두 사람의 행려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p.115)라고 말하며, [사인()과 연령]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표를 제시하고 있다(p.118).

         사 인

  년 령

병 사

동 사

익 사

영양불량

,타살

및 실수

아 사

노 쇠

중 독

불 명

합 계

20세이하

    111

     26

    37

      21

      6

      5

      -

      -

     16

    222

20-60세이하

    933

    181

   152

     121

     56

     47

     10

     20

     43

   1,563

60세이상

    235

     38

     9

      37

      6

     11

     28

     22

     68

    347

합 계

   1,279

    245

   198

     179

     68

     63

     38

     22

     68

   2,160

 [노년자의 사인()은 연소자와는 달리 병사, 동사, 영양불량, 노쇠, 아사, 익사 등의  순서로 그 원인을 가지며, 이는 모두 늙어서 그 자제()를 갖지 못하고 단독으로 활로를 구해야 하는 신세로써는 어쩔 수 없는 결과](pp.118-119)라고 말하고 있다.

 [사망자의 소지금품]에 대해서는 [본인은그들 방랑자들의 소지금품도 점검해야 하며, 본 소지금품의 조사는 그들 사망자가 어떤 정도의 자인가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믿는다](p.121)라고 하며 다음의 표를 제시하고 있다.

소지금품

없음

50전이하

2원이하

10원이하

20원이하

30원이하

40원이하

50원이하

100원이하

100원이상

인원수

1,348

590

111

85

17

5

1

1

1

1

2,160

 [사망자들이 그 몸에 입은 누더기 외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위의 표와 같이 실로 62.4%에 달해, 그들은 소위 순수한 무산자(ߧ)라 말할 수 있으며, 50전이하의 소지자 590명도 그 중에는 단지 지팡이 하나, 진료권 1, 금전 1.5, 거지망태기 하나 만을 가진 자들이 다수 포함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이들 590명도 앞의 무산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자들이다](p.121)라고 서술하고 있다.

  {조선}에 총독부 내무국의 야마나(ߣ٣) [조선의 행려사망자]를 실은 7년 후인 1928828일부 {동아일보}사설에는 [행려병사자의 격증]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본사가 서울에 있는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을 표방하여 3·1독립운동의 다음해인 19204월에 창간된 조선의 신문이다.

 

 경성부(ݤ) 내무과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행려사망자, 행려병자, 기아(ѥ), 미아(ڻ) 등이 작년의 같은 기간보다 2할 이상 증가하여, 7, 8년 전에 비교하면 실로 4배 이상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경성부 만의 취급통계로, 근년의 경성()은 인구 증가가 비교적 격렬했기 때문에 다른 지방도 이의 같이 격증했다고는 상상하여 어렵지만, 현하()의 조선인의 생활상이 날로 위축되어 어떠한 방법으로건 일대 전개책()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에 임한 이 때이므로, 각 지방에서도 행려사망자가 상당수에 달할 것이라는 불행한 추측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특히 그 원인의 대부분이 순전히 생활난에 기인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인도적인 견지에서 참아 좌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중략)

 가장 실제적인 문제로서 증가해 가는 행려병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인도적인 사업일 뿐만 아니라, 당국자의 맹성()을 촉구하여 예산면에 나타나는 낭비를 사회사업방면에 사용하게 함에 있어서도 커다란 자극이 되어야 할 것이다.({조선사상통신}743). 

 

 이상은 한센병자를 포함하는 조선전체의 행려사망자에 관하여 살펴본 것이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가 강화되어 조선인의 생활환경이 파괴됨으로서 [영양상태가 나빠지고 저항력이 약해]지면, 조선인의 한센병 발병자도 많아지고 또한 그에 따라 한센병자의 행려사망자도 증가한다. 당시의 정황에 관해, 편견이 강한 기사이기는 하지만 {오오사카 아사히신문·조선판}을 살펴보기로 하다. 그리고 행려사망자에 관해서는 {조선총독부 관보}에 기재된 내용을 분석해 가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부산의 바닷가가 그리워 모여드는 나환자의 무리/당국은 그 처치에 당혹

 매년 4월경이 되면 어디에선가 부산의 바다를 생각하며 남쪽 해변의 바닷가에 모여드는 나병환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일부 부민(ݤ)들과의 사이에 왕왕 감정상의 충돌을 빚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위험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당국도 무척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산서(ݼߣ)의 카카오(ʥʥڭ) 서장은 위생적 양심이 없는 그들을 부내(ݤҮ)에 방임해 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므로 어떻게든 처치할 예정이나, 현재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우선 감시를 엄중히 하면서 시설이 완비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부산)(1924812). 

나병환자의 단속을 진정

 카시이() 부산회의소 회장 등 동소() 임원 6명은, 29일 오전 경상남도의 와다()지사를 방문하여 나환자의 처치에 관하여 장시간에 걸쳐 진정했는데, 이는 경남도내에 있는 나환자는 약 1,300명으로 부산 부내(ݤҮ)에만 150명에 달하지만, 일정한 직업도 없이 시내를 배회하는 등 일반인의 피해가 적지 않으므로 당국이 조선 내의 이도()에 환자들의 수용소를 설치하여 수용, 요양할 대책을 강구해 주기 바란다는 진정에 대해 지사는,

 나환자들이 시중을 횡행함으로 인한 일반의 피해는 인정하나, ()의 예방 단속에 관한 근본법규가 실시되지 않고 있으며 수용, 요양케 하더라도 사정이 허락지 않으므로 내년까지만 기다리면 전남 소록도에 나환자요양소를 증설할 계획도 있는 것 같으므로 다소의 융통은 가능할 것이며, 시내의 번화가를 비롯한 타지역에서도 가능한 한도의 단속을 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부산(1927831). 

나병환자가 물품을 강요/부민(ݤ)들이 곤란

대구대구부내(ݤҮ)]에 목하 나병환자는 약 800여명의 달하고 있으나, 그 중 400명은 병원에 수용되고 300명은 부외(ݤ)의 비산동(ޫߣ)에서 정업()에 임하고 있으나, 나머지 100명은 거지와 마찬가지로 시중을 배회하면서 물품을 강요하는데 그 수단방법이 비열하여 일반인들이 몹시 피해를 입고 있다.(1928612). 

경남도의 나환자 해마다 증가/당국 단속에 고민

부산경남도내의 나병환자는 매년 증가하는 경향에 있으며 도(Գ) 위생과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도내의 환자수는 부산 서면() ()수용소에 568, 같은 서면의 나()상조회에 100, 자택에서 요양하고 있는 자가 1,050, 상시() 배회하고 있는 자가 420명 있으며, 기타 미조사된 구역과 조사에서 누락된 자들을 합하면 2천 수백명에 달하는 모양으로, 조선 내에서는 전남()에 이어 가장 많다. 이는 부산에 나()수용소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수용되기를 바라고 모여드는 것 같으며,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배회자가 적지만 여름에는 더욱 증가한다. 부군별(ݤܬ)로 보더라도 가장 많은 것은 항상 부산으로, 상시 300명 이상의 환자가 시중이나 교외를 배회하여(1931122).

 

 조선의 한센병환자가 부랑·배회한 이유의 하나로 직업을 얻기 어려웠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총독부는 이전부터 한센병자의 접객업이나 도살업 등에의 종업을 금하고 있었다.

 조선나예방령이 1935422일에 [제령]으로 공포되어, 그 제3조에 [행정관청은나환자에 대해 직업상 병독전파의 우려가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정하자, 각 도지사들은 [도령(Գֵ)]으로 [나환자의 직업금지에 관한 건]을 제정했다. 그 일례로서 아래의 강원도지사의 [도령]을 참고하기 바란다.

 조선총독부 관보 제2562                                       10(1935) 727(3종우편물인가)

지방청 공문

 조선총독부 강원도령 제16

 나환자의 종업금지에 관한 건을 아래와 같이 정함

                   10(1935) 713                          조선총독부 강원도지사 손영목()

 조선나예방령 제11항 및 동제4조에 의해 나환자로 진정(()된 자는 아래의 직업에 종사할 수 없다.

 1. 여관, 하숙집, 대실업(), 요리점, 음식점, 이발소 기타 손님의 내집()을 목적으로 하는 업무 및 산

    , 간호부, , , 안마, 예기(), 작부(), 여급 기타 직접 손님과 접하는 업무.

 2. 과자, 초밥, 육류, 유류(׾) 기타 음식물의 제조, 조리, 판매 또는 취급에 직접 종사하는 업무.

 3. 젓가락, 이쑤시개 기타 음식기구(금속, 도기류를 제외) 및 완구의 제조판매 또는 취급에 직접 종사하는 업무.

 4. 침구대여, 대본(), 헌옷 기타 이와 유사한 물건의 판매 또는 수수()에 직접 종사하는 업무.

                   부칙

 본 령은 발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

 직업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나 부랑, 걸식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 한센병환자들은 길에서 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조선총독부 관보}(이하 {관보})로 살펴보면 이틀에 한번 정도의 간격으로, 장소에 따라서는 매일같이 행려사망자가 고시되고 있다.

 한센병환자가 객사한 고시가 19121214일과 1220일에 계속 엿보인다. 그 기술을 다음에서 살펴보자.

주소불상()

 조선인 남()      씨명(٣) 불상()          추정연령 65세정도

 인상()           장사꾼 형상         166cm정도) ()를 센티미터로 환산(역자)

              둥근 얼굴, 눈과 귀는 보통, 코가 큰 편이고                           치열(֪)은 고름, 체격은 마른 편으로 결발(̿ۥ)

 착의()           흰색 무명 한복

 소지품                흰색 무명 주머니1

 사인()           나환자로 노쇠, 영양불량의 결과 아사()

 사망장소             전라남도 구례군 현내면 남서리

 () 대정()원년 1124일 사망한 것을 발견하여, 시체는 전라남도 구례군 현내리장이 가매장했음. 심증이 있는 자는 순천헌병분대, 경찰서 또는 현내리장에게 연락할 것.

                                                       대정() 원년(1912) 1214일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주소불상()

 조선인 남()      씨명(٣) 불상()          추정연령 20세정도

 인상()           151cm정도           산발(ߤۥ)             코가 없음.

                            나병에 걸린 자로 얼굴 각부에 요철이 있음

 착의()           흰색 한복

 소지품                일금 112

 사인()           나환자로 한기(Ѩ)로 인해

 사망장소             경기도 안성군 동리면 장대()(시장 가건물)

 () 대정()원년 126일 사망한 것을 발견하여, 시체는 경기도 안성군 동리면 장기기장이 가매장했음. 심증이 있는 자는 안성경찰서 또는 동리면장에게 연락할 것.

                                                       대정() 원년(1912) 1220일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전자()의 객사노인은 부랑걸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주소·성명이 모두 불상()으로 추정연령은 65세정도, 흰색 무명 한복을 입고 소지품은 흰색 무명 주머니. 사인은 [나병환자로 노쇠, 영양불량의 결과 아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친척도 신병인수인도 없이 굶어죽은 노인.

 후자()도 길가에 쓰러져 동사()한 추정연령 20세정도의 청년으로 주소, 성명은 미상. 인상은 [산발(ߤۥ), 코가 없으며 나병에 걸려서 얼굴 각부에 요철()]이 있으며, 120전을 소지하고 있었다. 추위가 심했던 126, 경기도 안성군의 시장 가건물 속에서 동사했다. 한센병에 걸린 이 청년은 온기(Ѩ)있는 방에서 묵을 수가 없었던 것일까?

 {조선총독부 관보}에는 19121121일의 [관보 제94]로부터 일본이 패전한 뒤인 1945830일의 [관보 제5567]까지 [행려사망자]가 기재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는 서울의 아세아문화사에 의해 142천장·전권이 복각됨으로서 조사가 가능해졌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필자는 우선 1916, 1928, 1933, 1938, 1940, 1944년의 6개년의 한센병자의 행려사망자의 기재에 관해서만 조사했다.

 필자는 6년 분의 {관보}에 실린 [행려사망자]에 대해 조사한 것에 불과하나, 6년분만으로도 행려사망자의 총수는 무려 17,955명에 달하며, 그 중에 한센병환자로 명기된 수가 240명에 달한다. 우선 {관보}에서의 한센병환자 행려사망자({관보} [()]라고 명기되어 있는 자)를 다음 표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년 도

1916

1928

1933

1938

1940

1944

합 계

행려사망자

사망자 총수ⓐ

   1,664

3,348

4,388

3,285

3,499

1,771

17,955

한센병환자수ⓑ

     20

55

78

44

21

22

240

ⓐ에 대한 ⓑ의 비율

1.20%

1.64%

1.78%

1.34%

0.60%

1.24%

1.34%

 이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927년에 시작되는 금융공황, 192910월부터의 세계공황과 그에 따른 경제불황이 일본제국 치하의 조선사람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관보}에 나타난 [행려사망자]의 수는 1928년부터 1940년까지를 살펴볼 경우, 매년 3,200명에서 4,300명에 달하고 있으며, 한센병 환자의 행려사망자도 1933년에는 78명에 이르고 있다.) 오오야 후지로() 감수 {한센병의학} 동해대학출판부(1997) [17장 근대한센병의료사]에 의하면

 [그 당시 한국의 각지에서 길가에 쓰러져 병사(ܻ) 또는 동사한 사람의 약 8할이 한센병환자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p.289)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 집필자가 어떤 기록을 보고 기록했는지는 불분명하나 [8할이 한센병환자였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비율이다.

 1933년부터 시작된 소록도 한센병요양소의 계속되는 확장공사와 함께, 조선 전토로부터의 격리·수용자수가 6,000명에 이른다. 1938년 이후의 한센병환자의 행려사망자가 감소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1938년의 44, 1940년의 21, 1944년의 20명과 같이 그 후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다음에는 조사한  6년간의 한센병환자 240명의 [사인()]에 대해 살펴보자.

 한센병환자가 [나성()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관보}에 사인으로 되어 있는 [나병·나()]라는 표현은 상당히 애매한 표현으로 적절치 못하다. 이 점에 대해 타마(ؤ) 전생원 자치회편 {구회일처()}(일광사, 1979)의 연표에는, [19301, 종래에는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사인으로서 [()]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소장() 회의에서 다수의 반대가 있어, 아카기() 위생국장의 {통계보다도 나환자의 보호를}이라는 취지에 의거하여, 사망진단서에 [()]라고 쓰는 것을 중지하고, 사망의 직접원인이 된 질병명을 기입하게 되었다](연표 p.21)라고 쓰여 있으나, {관보}에는 여전히 [사인 나병]이라고 써 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보}에 기술되어 있는 행려사망자 중의 한센병환자의 사인에 [아사··동사·자살]의 합계가 240명 중 83(34·6%)이나 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는 한센병환자를 소록도로 강제격리·수용하는 데만 주력할 것이 아니고, 이러한 [사회적인 사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사망장소]는 행려사망하는 한센병자들의 경우 부랑, 걸식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히 [다리 밑, 도로 밑, 노변(ܫ), 빈집, 시장구석, 공지, , 산기슭, 들판, 행려병자 구호소]등이 많다.

               년도별

 사인()

1916

1928

1933

1938

1940

1944

, 나병

15

26

45

19

10

15

130

아사, 영양불량

2

17

20

8

5

-

52

동사()

-

6

3

9

3

6

27

자살(߯)

-

1

2

1

-

-

4

기타의 원인

3

5

8

7

3

1

27

20

55

78

44

21

22

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