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지배와 한센병 


5 한센병환자에 대한 국가관리정책의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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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나예방령] [1911년 법률제30호에 의해 칙재()를 얻어 1935420일 조선총독우가키()에 의해 공포되었으며, [제령제4]에 의해 조선총독이 제정했다. () 예방령은 [부령제61]에 의해 동년 61일부터 시행되었다. 또한 420 [부령제62] [조선나예방령 시행규칙]이 정해졌다.

 [조선예방령] 공포에 앞서 191948일 조선총독부는 [부령제60] [학교전염병 예방 및 소독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전염병의 종류로서 제1조에 [1류 을()]에 백일해, 유행성 감기와 함께 [()]를 들고, 3조로서 [1류 을() 또는 제3류의 전염병에 감염된 직원생도는 그 병상에 따라 의사에게 적절한 조치를 받은 뒤 전염의 우려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 받기 전에는 등교할 수가 없다]라고 정하고 있다. 일본국내에서는 [학교전염병 및 소독방법]과 같이, [()]를 학교에 관한 법령 속에 포함시킨 예는 없었다

 [나예방령]을 두고 당시 조선에서 시판된 신문들은 어떤 보도를 했는가를 살펴보자.

 1933620일의 {오오사카·아사히신문·조선판} [나예방령 9월경 발포]라는 표제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경성()나예방협회의 사업계획 진척과 함께 총독부 위생과에서는 나환자의 강제수용, 격리, 소독 등을 규정하는 나예방령을 발포하게 되어 지난번부터 내지의 사정 및 법령적용의 실제에 대해 검토를 거듭한 결과, 최근 과내(ΤҮ)에서 최종적인 심의를 마쳤으므로 근일중()에 심의실로 회부하기를 결정했다. 동령 적용의 실제는 내지의 국립요양소의 그것에 따라 나환자의 수용치료에 만전을 기하고, 특히 위험성이 있는 방랑환자의 처치에 대해서는 유감이 없도록 고려해야 할 것이며 발포는 9월경이 될 전망이다.

 

 이 신문의 보도기사가 말하는 [내지의 법령적용의 실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자. 일본국내에서는 1907318일 공포된 [나예방에 관한 건](법률제11)가 있다. [이 법률의 성립에 대해서는 이케다()씨가 개략을 정리하여{의료보호를 위한 입법이라기보다 치안입법적인 성격이 강했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후지노() {일본파시즘과 의료} 1993, p.7). 후지노()씨는 이에 더해 {한센병과 인권·일문일답} 해방출판사(1997)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방법의 역사를 보면 법률제11호는 1916년에 일부가 개정되어 요양소장에게 환자에 대한 징계검속권이 주어졌습니다. 공립요양소의 실태는 요양이란 이름 뿐으로 일방적인 단속만이 행해졌으며, 당연히 이에 반항하는 환자도 있었습니다만, 요양소 측은 이 개정에 의해 그들 환자에게 대해 최고 30일 이내의 감금을 비롯하여, 7일 이내의 1/2까지의 감식() 등의 제재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법률은, 1931년의 개정으로 법률명도 [나예방법]으로 바뀌어 그때까지의 방랑환자 중심의 격리로부터 전 환자의 격리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p.38-39).

 

 전술()1933620일자 {아사히신문·조선판}의 기사도 일본 국내에서 193141일에 전면적으로 개정된 절대격리주의의 [나예방법]의 영향을 받아 쓰여진 것이다. 조선에서 [나예방령]이 구체화하는 것은 일본 국내보다 4년 늦은 1935년도 초두()부터이다.

 조선에서 발행·시판된 193519일부의 신문은 [나예방령 제정입안]에 관해서 3단·4단으로 뽑은 표제하에 이를 보도하고 있다.

천형병(ܻ)의 근절책으로서 나예방령 입안/환자를 발견하면 강제수용/소록도 수용은 4,000({동아일보}).

나병환자 강제수용·통제의 나()방지령 제정/경무당국이 입안 심의/발표는 오는 4월경

({조선중앙일보}). 

 더구나 같은 해 213일에는

나예방 법안/조선에도 실시/제령안(ֵ) 법제국에 회부({동아일보}).

 1935226일부의 {오오사까카·아사히신문·조선판},

[나예방령은 내지(Ү)와 큰 차이 없다/니시키() 위생과장 말하다]라는 표제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토오쿄오()로 향하던 총독부 니시키()위생과장은 23일 아침에 부산에 도착, 그 날밤에 부산을 출발하여 귀성()했는데 근일 공포될 나예방령에 대해 언급했다.

 나예방령은 목하 법제국에 회부되어 심의 중으로, 시행세칙도 거의 완성되어 있으므로 늦어도 금년 중에는 시행될 것이며, 그 내용은 내지(Ү)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법령으로서 환자의 진정()신고, 예방소독, 수용격리 등을 규정하는 것이다. 현재 조선 내에는 약 12천의 환자가 있으며, 전남 소록도에 2,300, 전도()단체에 약 1,700명이 수용되어 있으나, 금년 중에 소록도에 다시 1,600명을 수용하게 됨으로서 부랑환자는 거의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예방령이 실시되면 단속도 만전을 기할 수가 있게 되는 셈이다.

 

 조선총독부는 소록도 나요양소의 제1기 확장공사 준공을 목전에 둔 1935420, [제령제4호·조선나예방령]을 공포하고 전술한 바와 같이 [부령제61]로 그 실시는 61일부터 시행토록 했다. 또한 [부령제62]로 조선나예방령 시행규칙도 제정했다. 이는 나관리의 법률적 조치를 취함으로서 한센병환자에 대한 국가관리와 강제격리정책의 강화를 의미하는 식민지 입법이었다.

 [조선나예방법]이 공포된 다음해인 421일부의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은 큰 제목으로 그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나예방령 21일부로 발표/전문() 12조로 구성

병독전파의 방지에 근절책/이케다() 경무국장 담화

소지품의 처분을 제한/공중장소 출입도 금지/전문12조로 구성/조선나예방령 어제 발표

 그리고 동지()[조선나예방령]의 전문을 게재했다.

 

 425일부의 {오오사카·아사히신문·조선판} [방랑환자의 단속강행/나예방령 내용]이라는 표제 아래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거리의 공포]12천의 나환자 근절을 기(Ѣ)하기 위해 조선나예방령은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공포되었으며 드디어 61일부터 실시되게 되었으나, 특히 남조선지방에서 다년간 처치에 곤란을 겪었던 부랑나환자에 대해서도 동령 제3조에 아래와 같이 규정됨으로서, 경찰 기타 관계관청은 예방상 이를 강행할 수 있게 되어, 금후의 취급은 극히 엄중해지게 되었다.

 나환자에 대해 업태상 병독전파의 우려가 있는 직업에의 종사를 금지하는 일 나환자에 대해 시장, 극장 기타 대중이 집합하는 장소에의 출입을 금지하는 일 헌 옷, 헌 이불, 넝마, 누더기, 음식물, 기타의 물건으로서 병독에 오염되었거나 또는 그러한 우려가 있는 물건은 그 매매 또는 수수()를 제한, 금지하거나 그 물건의 소독 또는 폐기를 종용하거나 그 물건을 소독 또는 폐기하는 일.

 또 제1조에는 의사의 신고, 2조에는 가옥의 소독에 관해 규정하여 이를 위반한 자는 100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며, 행정관청은 예방 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환자를 본부(ݤ) 나요양소에 입소시킬 수가 있으며, 입소환자에게는 필요한 징계 또는 검속()을 가할 수가 있도록 되어있다.

 

 이를 조선 나예방령의 조문에 따라 살펴보도록 하자.

 

2조 행정관청은 나환자가 있는 가옥 또는 병독에 오염되거나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가옥에 대해 가옥물건의 소독 기타의 예방방법을 시행하거나 또는 그 시행을 환자 및 가족들에게 명할 수가 있다.

3조 행정관청은 나예방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다음 사항을 행할 수 있다.

 1. 나환자에 대해 업태상 병독전파의 우려가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

 2. 나환자에 대해 시장, 극장 기타 대중이 집합하는 장소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

 3. 헌 옷, 헌 이불, 헌 책, 넝마, 누더기, 음식물, 기타의 물건으로서 병독에 오염되었거나 또는 그 우     려가 있는 물건의 매매 또는 수수()를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그 물건의 소독 또는 폐기를 종용     하거나 또는 그 물건을 소독 또는 폐기하는 일.

5조 행정관정은 나예방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나환자를 조선총독부 나요양소에 입소시킬 수가 있다.

6조 조선총독부 나요양소장은 조선총독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입소환자에 대해 필요한 징계 또는 검속()을 가할 수가 있다.

 

 이러한 조문은 조선인 한센병환자의 국가관리, 통제와 강제격리의 철저 및 인권억압의 노골적인 표명(٥)을 표현한 것이다. 동시에 [조선나예방령]의 전조()를 통하여 행정관청의 감독 및 강제적인 시행방침을 법률로서 규정함으로서, 행정관청의 강제처분권의 강화를 꾀한 것이었다. 이는 1937년에 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73회 제국의회 설명자료] 가운데서 [본병(ܻ) 예방 상 필수요건인 환자수용 격리기관은 현저히 확장의 기운(Ѧ)에 도달했으므로 19354월 조선나예방령을 제정하고 61일부터 시행하여 환자의 강제수용, 소독, 예방방법 기타 나예방상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p.366)라고,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

 즉 소록도의 확장공사의 실행에 의해 조선나예방령의 공포·시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부령제62호·조선나예방령 시행규칙]도 역시 일본 국내에서 공포된 [내무성령 제16호·나예방법 시행규칙](1931715)의 모방이었다. [조선나예방령] 6조의 [조선총독부 나요양소장은입소환자에 대해 필요한 징계 또는 검속을 가할 수가 있다]라는 조항을 받아 [시행규칙]도 제8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정하고 있다. 이 조문은 조선인 한센병환자에 대한 인권탄압의 극히 노골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8조 나예방령 6조의 규정에 따라 징계 또는 검속은 아래의 각 호에 의함

 1. 견책(̹)

 2. 30일 이내의 근신

 3. 7일 이내의 상식량() 1/2까지의 감식()

 4. 30일 이내의 감금

   전항 제3호의 처분은 제2호 또는 제4호의 처분과 병과(ܱΡ)할 수 있다.  

   1항 제4호의 감금에 대해서는 정상()에 따라 조선총독의 인가를 받아 그 기간을 60일까지      연장할 수가 있다.

 

 193910월에 발행된 소록도갱생원 {1938년 연보}에는 [조선총독부 나요양소환자 징계검속규정]이 게재되어 있다({연보} pp.73-75). 이는 [동령 시행규칙] 9조의 [징계 또는 검속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조선총독의 허가를 얻어 요양소장이 이를 정한다]는 것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동 규정의 제4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정하고 있다.

 

4조 입소환자가 아래의 각 호에 해당될 때는 감식 혹은 감금에 처하거나 또는 이를 병과(ܱΡ)한다.

 1. 도주하거나 도주하려 할 때

 2. 함부로 타인의 물건을 사용하거나 또는 공용품을 점유한 때

 3. 다중() 취합()하여 진정, 청원을 하려한 때

 4. 직원 기타 자들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려 한 때

 5. 기타 소내(Ү)의 안녕질서를 해하거나 또는 해하려 한 때

 

 일본국내에서도 19301120일에 최초의 국립나요양소·나가시마 애생원이 개설되고 나면, 다음해인 1931130일에 전체 11조로 이루어진 [국립나요양소환자 징계검속규정]이 내무대신으로부터 인가된다. 조선의 [환자 징계검속규정]의 내용은 일본국내의 것과 거의 동일하나 다음 개소는 보다 엄하게 되어 있다. 4조는 입소환자의 [감식 또는 감금에 처하거나 또는 이를 병과(ܱΡ)]하는 행위를 정하고 있으나, 일본국내에는 없는 항목들이 식민지 조선에서는 부가되어 있다. 그것은

 

2. 함부로 타인의 물건을 사용하거나 또는 공용품을 점유한 때

3. 다중() 취합()하여 진정, 청원을 하려한 때

 

2항목이다. 이는 일본국내 이상으로 자의적이고 비인간적인 성격을 가진 [환자징계규정]이 식민지 조선의 한센병환자 수용소에서 통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록도 나요양소에서 제2기 확장공사가 시작되기 전년도의 현상을 잠시 살펴보자.

 

 19367, 나가시마 애생원 서기인 미야카와()(1904-49)는 녹동 부두에서 자경환()에 승선하여 소록도를 방문했다. 두 번째의 방문이다. 이 때의 방문기록을 미야카와는 편지지 14장에다 펜글씨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소록도에서 보거나 들은 것을 나가시마 애생원과 비교하면서 솔직하게 기록한 것으로, 미야카와의 기록으로부터 몇 군데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여기에 씌어진 내용으로부터 소록도 갱생원(조선총독부립 나요양소)이 한센병환자의 요양소가 아니라 환자의 인권을 전혀 고려치 않는 [강제수용소]로 변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가 있다.

 

·직원 중 내선인(Ү)의 비율 : 내지인보다 조선인이 조금 많을 정도의 비. 간호부는 40, 조선인은 전체 간호원의 약 5분의 3.

·직원 사이 : 대부분이 관헌 출신들로 거만한 사람들이 많아 직원들간의 따뜻한 분위기는 애생원 같지 않다고 한다.

·원장 대 직원들 : 직원들은 어떻게든 원장의 눈에 들기 위해 근무하고 있으며, 목이 잘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한다고 한다. 원장이 나들이 할 때 잔교()까지 전송하는 나가시마와 같은 풍경은 볼 수 없었다.

·환자 대 직원 : 작년 경까지는 각 생리(, 부락)의 검문소에 회초리()를 놓아두고 환자들이 따르지 않을 때는 이를 휘둘렀다. 야다(, 섬의 목사)씨는 [이는 환자들에게 매질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결국은 몇 천명의 다른 환자들이 마음을 합쳐 직원들을 매질하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직원들에게 그 잘못됨을 지적하여 많은 미움을 받았다.

 원장은 이 사실을 모른 척 하고 있었다. 회초리는 사용하지 않으나 맨손으로 그들을 구타하는 일은 가끔 있는 모양이다. 직원과 환자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원장은 싫어한다고 한다. 잠시 환자들 집에 들러서(근무 이외에) 어린이들을 안아주면서 놀고 있노라면 바로 사무계통의 사람들에게 꾸중을 듣게 된다고 미키(߲)간호부가 말했다.

(중략)

·환자들은 직원을 믿지 않아 : 환자의 대부분은 기독교인. 마치 습관처럼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역시 그렇지 않아서, 그들 나름대로의 주의(기독교 주의)가 있으며, 사물의 선악이나 어떤 인물인가는 구별할 수가 있다. 따라서 믿어줄 줄 아는 성의가 없는 자들을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서로 매우 굳게 단결하여 나쁜 일이 있더라도 결코 직원들에게 고자질하는 일이 없다. 서로를 감싸 감추어 버린다.

·의료문제, 야간의 이상() : 중앙에는 중앙병실이 있어 1200명이 입실해 있다. 전체환자는 4,000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직의사는 한 사람이다. 당직 간호수는 한사람 씩 각 부락의 대기실에 대기. 간호부들은 당직이 없다.

 중앙병실에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부락에 있는 환자들의 야간의 이상()에 대한 치료는 거의 드물고, 부탁하더라도 의사가 오지 않아 결국은 의사의 진찰을 받지도 못한 채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임종 때만은]이라고 병자들이 씁쓸히 말했다.

·남녀간의 문제 : 1.세탁관계 - 여자가 남자에게 옷을 빨아주는 것. 거기에서 연애관계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2.부부관계 - 금년 4월부터 낡은 병실 등을 부부사()로 활용하여 부부제도를 인정. 바젝토미(수정관 절제수술)을 받아 부부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의 부부는 약 2백쌍

 () 중병실 2(다다미 4)1쌍씩, 4평에 2쌍씩, 기타 4쌍씩으로, 야간에는 커텐을 쳐서 1쌍씩 구별한다. 모기장은 따로 따로(1쌍씩) 치느냐고 물으니, 아직 모기장이 지급되지 않았단다. 모기가 있을텐데 라고 야다()씨에게 물으니 [네 있습니다]라고 말한다.(전부 온돌이므로 평수는 정확하지 않다). 언젠가는 부부사도 건설될 것이라고 한다.

 생략

 한쪽이 장애자일 경우에 일어나는 곤란 : 일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1개월에 10전씩 지급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부부제도가 인정되지 않은 동안에는 장애자에게는 부첨인을 붙여주었으나, 이것이 부부사()에 들어가게 되면 그 부첨이 없어져, 처가 장애자이건 남편이 장애자이건 그 시중을 건강한 쪽의 상대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일을 해서 돈을 벌던 남편이나 혹은 부인이 일을 하러 나갈 수 없게 되고 수입이 끊기고 만다.

 즉 이런 부부들은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10전만을 용돈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므로, 몹시 난처하다는 것이었다.

최근 겨우 단종수술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열렬한 기독교인으로서 일부 환자들의 난처한 문제 : 한 쌍의 커플로 인정받아 부부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록도 신사의 분사()에 참배하고 보고를 해야 하나, 그리스도 이외에는 신이 없다고 믿는 환자의 경우, 생각에 따라 이것이 매우 괴로운 일이며, 그 때문에 부부사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소록도의 환자들은 성결교의 열성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

 (중략)

·환자의 위안 : 외부로부터의 참관인이 있으므로, 환자들은 그 때마다 [깨끗하게 청소하라]는 소리를 듣지만, 환자를 위문하러 오는 사람들은 없다. 영화 등 가지고 와 주질 않는다.

 환자 서로 간의 예능이나 연기로 서로 즐기는 일도 없다. 소녀가 있어도 장난감이 하나도 없다. 인형 하나, 벽걸이 하나라도 걸어서 소녀의 마음을 녹여주고 어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업비를 지불하면서까지 승려의 설교를 들려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으로, 그런 짓을 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당사자를 비웃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동차가 여러 대 있어도 환자는 탈 수가 없다. 가끔 트럭에 태워서 일하는데 끌려갈 뿐이다(이하 생략).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매일} 등을 살펴보면 조선총독부 통치하에서 경찰서나 나()행정당국에 의해 [나환자촌락]을 깡그리 태워버렸다는 기사가 많다. 그 가운데서 몇 개의 사례를 들어보자(밑줄은 필자).

 

나환자 부락을 불태우고 추방/아직도 알 수 없는 목과 몸통

 [구포카와무라()기자경부선 구포역 부근의 노선 위에서 발생한 목과 몸통이 없는 여자 역사체() 사건은 괴기한 사건으로 세상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으나, 구포 주재소에서는 범인을 부근에 소굴을 둔 나환자로 단정하고 17일 이른 아침 마츠()주임과 수명의 서원()으로 이루어진, 유체의 목과 몸통 및 소지품의 조사반을 조직하여 부근의 나환자 부락 2개소에 대한 엄중한 수사를 실시했으나 증거품을 발견치 못하여 계속하여 수사를 속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락은 동일 중()에 불태우고 환자들은 다른 곳으로 추방키로 하였다(오오사카·아사히신문·조선판, 1933518).

대구부내(ݤҮ)로부터 나환자를 일소()

 [대구서()에서는 대구부외의 평리동, 비산동 및 내당동에 거주하는 나환자 약 5백명의 일소()에 대해 연구 중에 있었는데, 이번 경북도내로부터 250호의 나환자를 소록도요양소로 수용함에 있어 상기 인원 전부를 대구 관할내의 환자로 충당케 되어, 전기() 500명중 250명은 소록도에, 그 중 100명은 대구나요양소에, 나머지 150명은 동서()에서 여비의 일부를 지급하고, 전기한 3개동의 150여호에 달하는 환자부락을 28일 일제히 소각한 뒤 각기 본적지로 귀향시키게 되었다.

 이로서 다년간 부민(ݤ)들에게 불쾌감을 주었던 나환자 부락이 드디어 모습을 감추고 나환자들도 부내(ݤҮ)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소록도행은 28일 아침 대구역에서 부산으로 회송되었다(오오사카·아사히신문·조선판, 19351119).

 

부산을 배회하던 나환자 일소()되다/400명을 소록도로 보내다

 [부산발경상남도로부터 전라남도 소록도갱생원에 수용되는 나병환자 400명은 내달 6일 동원()의 전속 수송선으로 부산으로부터 출범한다. 환자의 대부분은 부산부내(ݤҮ)를 배회하던 자들로 이번 수용에 의해 동부(ݤ)의 도시경관은 면목을 일신하게 될 것이다](오오사카매일·조선판, 19391028).

 [부산발부산 부민(ݤ)들의 위협이 되었던 동부(ݤ) 대영리에 집단거주하던 나환자 수백명은 한사람도 남김없이 전남소록도의 요양소로 수용하게 되었는데, 부산부는 이 나환자들이 거주하던 가옥을 전부 매수한 뒤 소각하기로 결정, 116일 오후1시 부회(ݤ)를 소집하여 경비 3,000여원의 예산을 부의(ݾ)하기로 결정했다](오오사카·아사히신문·조선판, 19391028).

 

 {동아일보}에도 [나병자가 있던 소굴을 소각(ʿ)/60명을 소록도로 보내고/통영시민 위협제거]({동아일보} 1933106)라든가 [대구의 명물 나병환자/금후로 단연 절멸방침/소록도 수송과 향리()로 송환/나환자 상조회도 해산], [해산(ߤ)반대파 검거하고 집단 3부락 소진()](19351130)이라는 기사들이 눈에 띈다.

 

 왜 이처럼 [()부락]을 경찰이나 행정당국은 깡그리 태워버리는 것일까? 후지노()씨는 {일본 파시즘과 의료()}(, 1993)에서 [주택을 깡그리 태워버린다는 것은 주민으로 하여금 두 번 다시 그 자리에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소독을 위한 이유도 있었다](p.79)라고 말한다. 조선의 경우, 촌락을 깡그리 태워버리는 행위는 한센병환자를 소록도갱생원으로 강제수용하는 것과 병행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나부락]이 행정에 대해 환자의 의료비 등을 요구하는 거점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치안상 그것을 소각한다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