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Ө)]과 우생사상() 


2 나요양소 수용환자의 사망원인

--------------------------------------------------------------------------

 나가시마() 애생원장 미츠다()194936일 나가시마에서 열린 [나병리강습회]에서 애생원에 수용된 [나환자의 주요사인()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 강연내용은 {미츠다(), ()에 관한 논문 제3}(195012월 발행)에 게재되어 있다(pp.99-123). 이 미츠다()의 강연에 근거하여 애생원이 개원된 1931년 이후 1948년까지의 18년 간의 동원()의 수용환자의 사망수와 사망률, 사망요인, 사망연령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년도별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총 인원

453

500

751

1,008

1,143

1,212

1,338

1,391

1,453

사망자수

 15

 33

 45

  46

 102

  79

  80

  72

  91

사망률(%)

3.31

6.60

5.99

4.56

5.24

6.52

5.98

5.17

6.26

년도별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

1946

1947

1948

총 인원

1,533

1,783

1,883

2,009

1,851

1,478

1,299

1,216

  13

사망자수

 102

 138

 166

 163

 227

 333

 160

 117

  50

사망률

 6.65

 7.74

 8.81

 8.11

12.26

22.53

12.32

 9.62

 3.62

 

 

 1. 수용환자수, 사망수, 사망률(%)

 미츠다()1944-46년의 사망수가 3년 간에 무려 720명이며, 1945년의 수용환자사망율이 22.53%, 100명중 23명에 가까운 환자가 사망한 것에 관해 [영양에 관해서는 전쟁 중의 영양불량의 영향으로]라고 인정하는 한편,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옛날에 감손()요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본묘사()에서 조()와 같은 잡곡으로 조식()을 할 때는 병세가 호전되다가 신앙을 잃어버리고 들로 나가면 다시 병세가 악화한다는 실례()가 있습니다. (중략) 1909년경에는 하루의 식비가 12.5전이라도 불평하는 자들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미식(ڸ)을 하고 있으니 병세는 어떨까요? 결절(̿)은 나타나는 모양이지만 사망률은 상당히 감소하고 있다. 종래에는 6%정도였는데, 1948년도에는 3.6%까지 감소했다. 이는 1945년도에 20%나 죽어 도태되어버린 것은 아닐까(pp.105-106)].

 

 2. 주요 사인별(ܬ) 실수(), 백분율(%)

 미츠다()는 부검() 1,583례에 관해 해부록()과 임상, 임상소견을 참고로 통계를 작성했다. 그에 의하면 [결절(̿) 나환자 남성의 사인의 54%, 여성의 47%는 결핵으로, 결절나환자의 약 반수는 죽는다. 신장염이 사인()이 되는 경우는 평균하여 13%](p.109)라고 한다. 한 때 나가시마 애생원의 환자였던 미츠이(߲)가 패전말기인 1945, 식량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에서 온 신장염에 걸려 전신이 고무공처럼 부어 올라 대만(ؽ) 낙생원에서 사망한 것처럼, 결핵이나 신장염도 영양실조 때문에 체력이 떨어짐으로서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27)은 주요사망원인에 대해 미츠다()가 작성한 표를 바탕으로 필자가 작성한 것이다.

병 명

결 핵

신장병

폐 렴

패혈증

뇌출혈

나성쇠약

기 타

합 계

실수()

789

210

174

121

25

21

39

204

1,583

비율(%)

44.9

13.3

11.0

 7.6

1.5

1.3

2.5

12.9

100.9

 

 3. 한센병환자의 사망연령

 미츠다()는 부검1,583례의 표를 병형별(결절라(̿), 반문신경라(ڣ))로 정리하고 있으나, 그 통계에 따라서 필자가 작성한 것이 (-28)이다.

연 령

020

2130

3140

4150

5160

60세 이상

합 계

실수()

60

340

492

281

195

215

1,583

비 율

3.8

21.5

31.1

17.7

12.3

13.6

100.0

 [발병 후 사망까지의 경과년수(ΦҴ)에 관해서] 미츠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과연수를 좌우하는 인자()는 영양과 결핵대책의 여하()에 있다. 영양에 관해서는 전쟁 중의 영양불량의 영향으로 1945년에는 23%의 높은 사망률을 보였으나 전후() 영양의 향상에 따라 1948년에는 4%까지 저하했다. 또 하나는 결핵을 박멸하는 일이 경과연수를 연장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각 요양소에서는 결핵을 박멸할 대책을 수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p.113-115).

 미츠다()이 말하듯이 과연 1948년에는 나가시마 애생원에 수용되어 있던 환자들의 영양이 향상되어 [요즈음은 미식(ڸ)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결핵의 박멸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나가시마 애생원장으로서 세우고 있었던 것인지 의심스럽다. 나가시마 애생원의 요양환경을 살펴보면 협소한 병실과 함께 경증환자들에게 부첨인으로서의 간호작업을 [강제화]함으로서 수용환자의 사이에 결핵을 만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미츠다()가 나가시마 애생원에서 결핵을 없애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4. 식민지 조선의 한센병요양소(소록도갱생원) 수용환자의 사망수, 사망률(%)

 (-29)1931년부터 일본이 패전한 1945년까지의 수용환자수, 사망자수, 백분비(%)를 소록도갱생원 {1941년 연보}(1942)와 중앙나요양소 소록도갱생원 {국무개황}(1950)을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다.

    년도별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총 인원

810

811

881

2,194

3,733

3,838

4,783

5,025

사망자수

 14

 18

 21

   38

 103

 138

 102

 173

사망률(%)

1.73

2.22

2.37

 1.73

2.76

 3.60

 2.11

3.44

년도별

1939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

 

총 인원

5,675

6,136

5,969

5,887

5,575

5,407

4,416

 

사망자수

 282

 294

 432

 387

 399

 412

  931

 

사망률

4.72

 4.79

 7.24

 6.56

 7.15

 7.61

 21.08

 

 1945년의 소록도갱생원의 사망자 931(21%)은 나가시마 애생원의 사망율과 거의 동률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26)(-29)를 비교해 보면 나가시마 애생원의 수용환자의 사망율이 식민지조선의 소록도갱생원의 그것을 상회하고 있다는데 놀라게 된다. 미츠다()가 말하는 [각 요양소에서는 결핵을 박멸할 대책을 수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은, 나가시마 애생원장으로서 자책()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일까?   

 

 5. 소록도 한센병환자의 사망요인

 황태후인 사다코()(19515월에 사망, 정명(٥)황후와로 추서됨)의 시종의()를 역임했던 니시카와(۰) [조선 소록도갱생원을 통해 본 조선의 구라사업](1940) 가운데서 소록도 한센병환자들의 사망요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선의 갱생원 개원 이래의 사망환자 1,034명의 사인(1939년 조사)을 보면 (1)결핵이 제1위를 점하여 267명으로, 그 내역은 폐결핵 218, 복막염32, 늑막염17명이다. (2)다음은 나성쇠약()195(3) 그리고 신장병이 83명으로, 그 내역은 신장염55, 위축신() 28명이다. (4)그 다음은 폐렴  62명과 (5) 패혈증 27명으로 되어 있다. 스호오()원장의 이야기로는 결핵사(̿)80%이다.

 그리고 나환자는 일반적으로 폐렴에는 약하다. 독감이라도 유행하면 줄을 이어 쓰러져 죽어간다고 한다. 이처럼 결핵사가 많다는 것은, 집단생활의 밀도에도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오래된 요양원일수록 결핵사(̿)가 많은 모양이다(p.6).

 

 6. 소록도 한센병환자의 사망연령

 (-30)은 개원된 1915년부터 1941년까지의 수용환자의 사망연령을 나타낸 것으로, 필자가 소록도갱생원 {1941년 연보}(1942)의 기술에 따라서 작성한 것이다. (-30)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 30대의 소위 한참 일할 나이의 [사망자수]가 전체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과중한 노동과 함께 [집단생활의 밀도]와 영양부족 등으로 인해 병에 대한 저항력을 잃어 사망한 사람들이다. 작업 중 또는 감금소 내에서 [박살(߯)](스호오() 보고, 193610월의 관공립나요양소 소장회의 의사록)(맞아죽은) 조선인은 병으로 사망한 환자수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연 령

020

2130

3140

4150

5160

60세 이상

합 계

실수()

105

 435

566

409

151

94

1,760

비 율

6.0

24.7

32.2

23.2

8.6

5.3

100.0

 

 유준(׳)박사는 경성의전(, 서울대의대 전신)을 졸업 후 19411월부터 약 1년간 스호오()원장 밑에서 의사로서 소록도갱생원에 근무한 인물로서 A Korean Model for the Healing of Leprosy(1993)이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그 가운데 The detention house(감금소)라는 제목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설명문을 쓰고 있다

 [감금소는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또한 증오해야 할 장소였다. 권력자인 원장은 환자들을 체포 감금했으며, 그 구금은 29일 이상에 미쳤다. 일단 감금되면 환자들은 좀처럼 자유의 몸이 되어 감금소 밖에서 살 수 있는 일은 없었다(거의 감금실 안에서 살해당했다)](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