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의 인자함]의 의미하는 것


5 소록도갱생원장 스호오 마사스에()의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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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나관리협회편 {한국나병사}(1988)에 다음과 같은 일절이 있다.

 

 (소록도의) 환자들은 보은감사일마다 빠짐없이 스호오() 동상에 참배해야 했고, 새로 가정을 갖는 부부 역시 그 첫날, 동상 앞에 나가 감사의 참배를 하여야만 하였다. 매월 1일과 15일에는 신사참배, 20일은 동상 참배, 매주 월·수요일은 애국반회(), 수시로 열리는 시국강연회, 이렇게 쉴 새없이 돌아가면서도 벽돌 만들기, 가마니 짜기, 관솔따기, 숯 굽기 등의 노역에 환자들은 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p.111-12).

 

 소록도갱생원 {1940년 연보}에는 공문서의 책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스호오(, 1885-1942) [동상()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p.6).

 

1 나라의 정화() 위해 몸바치신

  우리들의 자부(ݫ) 원장각하.

  은혜의 동산에서 우리들의 무료()를 달래주는 뜨거운 마음.

  여기는 우리들의 갱생의 뜰

2 감격의 눈물 넘쳐나는 우리들

  영원히 기리자 각하의 위업

  뜻으로 세운 수상()은 친절한 정성과 자비로운 손길에의 보답

  모아서 축하하세 오늘은 좋은 날     

 

 1942620일은 변함없이 계속되어온 보은감사일의 일이었다. 이 날도 환자들은 병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스호오()원장의 동상 앞 광장에 부락별로 정렬하여, 관례에 따라 연단에 올라 경례를 받은 뒤에 한마디 훈시를 할 예정의 스호오()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직원지대로부터 자동차로 내려온 원장이 오전 85, ()의 각 과장 등 수행원을 대동하여 중증환자를 수용하는 중앙리 환자들의 대열 앞을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환자 한사람이 그 대열로부터 뛰어나와 스호오()원장의 오른쪽 앞을 가로 막아서며 [너는 환자들에 대해 너무 무리한 짓을 하므로 이것을 받아라]라고 외치면서 휴대한 식도()로 원장의 오른쪽 흉부를 한번 찔렀다. 스호오()는 이 자상(߿)에 의한 대량출혈로 인하여 같은 날 오전 930분경 동원() 관사에서 사망했다.

 스호오()를 살해한 자는 이춘상(, 원내명은 ), 27세였다. 그는 광주지방법원, 대구복심()법원에서 각각 사형판결을 받고, 동년 12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기각됨으로서 다음 해인 1943219일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조선총독부 이시다()후생국장은 동년 623일 담화를 발표하여 소록도갱생원장 스호오()620일 환자에게 찔려 순직, 사망한 사실을 전했다. 다음날인 624일의 총독부 어용신문인 {매일신보}3단 크기의 표제로 [소록도갱생원의 은인 스호오()박사 순직/월례의 보은감사일에 일어난 참변(ܨ)]이라고 스호오()의 죽음을 보도하고 [1922년에 내선()한 갱생원의 공로자]라고 소개했다.

 625일에는 일본국내의 각 신문도 일제히 [갱생원장 살해]를 보도했다. 신문기사는 총독부의 이시다()후생국장의 [사건진상] 발표담화를 그대로 반영하여, 한결같이 [범인은 날 때부터 흉포한 자로 입원 이래로 종종 일을 만들어서 말다툼과 폭행을 자행하는 불량자로서, 편견에 의해 원장에게 흉인()를 들이댄 것](토오쿄 아사히), [불행한 전과자인 한 불량환자의 흉인에 쓰러지다](오오사카 아사히)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지방지인 히로시마() {츄우고쿠()신문} [전과자인 일개 불량환자의 식도에 찔려 결국 순직사망원인으로 동() 환자는 날 때부터 광포()하여 담당 간호장으로부터 종종 훈계를 받은 적이 있으나, 이를 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오인하여 이번 행동에 이른 것이다]라고 살해자의 상()을 그리고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 [서임() 및 사령]에 의하면 사망한 스호오() [4, 3]에 서임되어 서보장()과 일급봉이 하사되고 있다. {토오쿄 아사히}

 

 다시 [스호오() 소록도갱생원장의 뜻하지 않은 순직에 대해 황송하게도 황태후폐하께서는 동 원장의 생전의 구라(ϭ)사업에 대한 공적을 어여삐 여기시어 특별히 장례비를 하사하신다는 말씀이 있었다]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당시 일본국내의 관계자는 [스호오()의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 당시 일본MTL(Nippon Mission to Lepers)은 회()의 명칭을 일본구라협회로 변경하고, 기관지도 {일본MTL}에서 {단풍그늘()}으로 개명하고 있었다. [()]이란 소헌()황후 하루코(ڸ)(명치천황의 부인)의 궁중 인장이던 [신엽()]에서 따온 것이다.

 

 스호오()가 살해당한 다음달, 19427월호의{단풍그늘}(135)은 지면 첫머리의 논설로서 [스호오()갱생원장을 애도하며/특수요양소의 긴급한 설치를 바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있다. 특수요양소란 나가시마()사건(19368) 직후의 관공립 나요양소장  회의석상에서 소장()들이 정부에 대해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즉 위생국장의 [특수요양소란 불량자들을 모아두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나가시마 애생원의 요츠야()사무관은 [특수한 감금장에는 요양소의 흉악한 자들을 감금한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격리 위에 다시 격리를, 강권(˭) 위에 다시 강권을 일본구라협회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19428월호의 {단풍그늘}(112) [6,000명 환자의 자부(ݫ)로 존경받던 스호오() 소록도갱생원장의 순직]이라는 표제 아래 조선총독부 이시다()국장의 담화를 그대로 전하고 다음과 같은 기술()로 문장을 맺고 있다.

 

 [이번 스호오()박사의 조난이 일개 불량환자의 편견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조선 나요양소의 구세주라고 할 수 있는 은인이며, 일찍이 동원() 입원환자들의 손에 의해 2,3년 전에 흉상(틀림. 3.3m나 되는 전신상필자)이 건설된 것을 보더라도 원장의 공적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사실을 사실로 보지 않고 현지에 가보지도 않고, 갔다고 하더라도 환자들의 목소리나 생활, 치료실태를 알아보려 하지 않고, 오로지 조선총독부와 병원당국이 내놓는 행정자료만으로 스호오()와 스호오()를 살해한 이춘상을 그린다면 {단풍그늘}과 같은 기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동지()를 읽었다. 이는 당시도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단풍그늘} 8월호가 출간된 같은 달, 나가시마 애생원장 미츠다() [소록도 갱생원장 스호오()박사의 서거를 애석해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애생} 12권 제8(19428월호)에 게재했다. 미츠다()의 논지도 {단풍그늘}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스호오() [사랑의 정신을 가진 구라자(ϭ)], 이춘상을 [흉포한 불량도배]로 그리고 있다.

 미츠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범인은 태어날 때부터 흉포하여 입원한 이래로 일을 만들어서는 구론폭행(Ϣ)을 일삼는 불량도배였다. 일찍이 미국이 세계 제일을 자랑했던 [크리온] 나요양소도 환자주택이나 병실, 연구실, 사무실을 보더라도거의 비교가 되지 않는 정도로 갱생원 쪽이 우수하여 아마도 세계 제일의 나요양 설비라 하더라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모두가 스호오()원장의 피와 땀의 결정이다. 이토오()공이 조선인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국은 [하르빈]역에서 무지한 흉한() 안중근()에게 쓰러졌다. 스호오()원장도 조선의 동포를 선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결국 원장의 사랑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일개 흉한으로 인하여 목숨을 빼앗겼다. 진실로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p.1-2).

 

 조선인 나환자에 있어서의 스호오()가 이토오 히로부미()라면 이춘상은 그야말로 안중근이다. 미츠다()가 말하는 [조선인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이토오(), [무지의 흉한] 안중근이라는, 두 사람에 대한 형용사는 용서하기 어렵지만, 스호오()이토오 히로부미()·이춘상안중근이라는 대비구도로 보는 미츠다()의 견해에는 필자도 동감이다.

 소록도에 수용된 이춘상이 목숨을 걸고 원장 스호오()를 식도로 찌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법정에서 무엇을 호소하고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현재 한국의 총무처·정부기록보존소에 남겨지고 있는 조선총독부 판사가 쓴 [사형판결문]이라고 하는 편견에 가득 찬 문장의 속에서, 그래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이춘상의 마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춘상에 대한 [판결문]은 세 개가 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부의 사형판결문(1942820)과 대구복심법원 형사부의 사형판결문(동년 102), 그리고 고등법원 형사부의 상고기각 판결문(동년 127) 이다.

 필자는 당시의 이춘상을 아는 두 사람의 증언을 들었으나, 이춘상(소록도에서는 이춘성()이라 부르고 있다) [판결문]에 말하는 것처럼 [나환자 특유의 편협성]으로 스호오()를 살해한 것은 아니다(이것 자체가 한센병환자에 대한 판사의 차별과 편견이다). 소록도의 C할머니(1920년생)1997129일 증언에 있는 바와 같이 [범인은 {6,000명의 환자를 대신해서 내가 했다}라고 말했어(본문 p.000참조). 자기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여기의 상태가 너무나 지독하고 사람들이 몹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참아 볼 수가 없었데]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19951125일 밤, 한국 충청북도 대전시 교외의 충광농원 노인홈의 일실에서 들은 E할아버지(1927년생)의 증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19414, 그냥 나이로 16살 때에 충청남도의 자택에 경찰관이 갑자기 들이닥쳐 트럭짐칸에 실려 소록도로 강제수용 되었습니다. 트럭에서 바다를 보았을 때는 이대로 바다로 내던져져서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록도에서는 동생리 병사에서 이춘성()과 같은 방이었습니다. 이춘성은 평소에는 조용한 사람으로 매일 정성껏 일기를 쓰고 있었고, 620일날 스호오()원장이 찔려 죽는 현장도 10미터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절대로 흉포한 성격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은 해방 뒤인 1946년에 소록도를 떠났습니다]

 

 이춘상에 대한 제1심 판결문, 2심 판결문 및 제3심의 상고기각 판결문은 모두 카타카나 와 구한자()로 된 구독점도 없는 타이프 활자의 문장이다. 용지는 제1심은 [광주지방법원], 2심은 [대구지방복심법원], 3심은 [조선총독부 재판소]의 용전()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 판결문을 읽기 쉽도록 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상용한자와 히라카나로 바꾼 뒤, 탁음점과 구두점을 부가(ݾʥ)했다. 한국에도 아직 한센병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차별이 있으므로 일부는 복자()처리하고 타이프의 활자가 빠져서 읽을 수 없는 글자는 표식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대구복심법원의 제2 [판결문]은 제1심의 광주지방법원 [판결문]과 거의 같은 내용이므로 할애했다. 단지 제2심의 마지막 13행은 [1]과 다른 부분이 있다.

 조선총독부 판사가 쓴 [사형판결문]이라는 편견과 예단(Ө)에 가득 찬 문장의 안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소록도 수용환자 이춘상의 심정과 무념(ҷ)함을 찾아봐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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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17(1942) 형공합() 47

              판 결

본적 부산부(ݼߣݤ) 영주정() 477번지

주거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소록도갱생원 중앙병사

              무직  () 이춘상()

                                호시야마 슌죠오(ߣ) 27

 우기() 자에 대한 살인피고사건에 대해, 당원()은 조선총독부 검사 하야시(٥)가 관여심리를 수행, 좌기()와 같이 판결함.

              주문()

 피고인을 사형에 처함

              이유()

 피고인은 경상북도 성주군 면 리의 일개 빈농의 집에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사별하고 정식교육을 받고 못하고 있던 중, 14세 경에 나병에 감염되어 치료를 목적으로 무단가출을 하였고, 그 즈음 대구나병원에 수용되어 2년간 가료(ʥ)한 결과, 증상이 일시적으로 가벼워져 퇴원을 허가받은 뒤, 안경, 타올 기타 일상잡화의 행상을 하면서 대구, 부산, 경성지방을 배회하던 중, 1939년 봄 경성 본정경찰서에 검거되어 동년 5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절도교사() 및 장물수수죄로 징역 1년 벌금 50원에 처해졌으나, 나병이 재발되어 동년 6월 경성 서대문형무소로부터 광주형무소 소록도지소로 이감되어, 복역과 동시에 조선총독부 나요양소 소녹도갱생원에 수용되었으며, 이래 동원 동생리 병사(경증환자수용)에서 가료중이던 자로서, 입원 직후부터 나환자 특유의 편협성으로 갱생원 당국이 부정사실이라도 숨기고 있는 듯이 억측하거나, 혹은 환자의 일시 귀성허가의 불공평 및 일상 작업의 가혹함을 지탄하거나, 혹은 조선총독부 나요양소 갱생원환자 징계검속규정에 따라 마련된 동원 감금실을 환자를 살해하기 위한 설비이며, 법률에 따르지 않고 환자를 살해하고 있다고 하는 등, 원 당국의 재원환자에 대한 처우에 관해 갖가지 편견, 오해를 갖기에 이르렀으며, 그 중에서도 동원 간호주임 사토(߲)가 평소에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지극히 준열(֭)할 뿐 아니라 19418월부터 동174월 사이에 중증 부자유환자에 대해 정식 배급미(ڷ)로부터 하루 한 홉 정도를 감하고, 한 달에 한번 모든 환자에게 지급되는 간식백미 6홉을 전폐한 것을, 이 모두가 원장 스호오()(58)의 의도에 의한 것으로 망단(Ө)하여, 동인()에 대해 극단적인 반감을 가지기에 이르렀으며, 19421월경부터 갱생원의 추상()을 일반사회에 폭로하여 동원환자에 대한 처우개혁을 꾀할 것을 사유()하고, 그 기회를 얻기 위해 동원 동생리 부락대표 최일봉() 및 간호주임 시게오카(˪׺)에 대해 수차에 걸쳐 일시 귀성허가를 신청하고 그 양해운동을 꾀했으나, 동년 61일 갑자기 중증환자 부첨(ݾ)을 명 받아, 동생리병사에서 중앙병사(중증환자 수용)로 옮겨지게 되자, 일찍부터 일시 귀성 허가는 부락대표 및 간호주임의 마음에 달려있어 정실관계에 따라 좌우된다고 망신()하여 전기()와 같이 그 양해운동에 힘쓰다가, 중앙병동에 옮겨지고 나서는 부락대표, 간호주임 등의 얼굴이 일변(ܨ)하여 일시귀성의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고 비관하여, 이 또한 원장 스호오()의 짓이라고 사유()하기에 이르자, 평소의 불평불만이 일시에 끓어올라 동월 2일 재원환자 6,000명을 구할 길은 오직 피고인이 일신()을 걸고 원장을 죽이는 일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여 원장 스호오()를 살해할 것을 결의하고, 동월 8일 소록도신사 분사()에서 거행되는 대조봉재일() 기념식을 기하여 요격(̪)하려 했으나, 신사()를 더럽히게 됨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결행을 중지함으로서 그 뜻을 다하지 못하고, 그 후 결행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동월 18일경 중앙리 부락대표 노양춘()으로부터, 지난 날 원장 스호오()가 환자고문, 부문대표, 애국반장, 사장()들을 중앙공회당에 모아, 환자들이 애국의 열성을 피력하는 방법으로서 (일본)적십자사에 가입하는 것이 의의가 있다고 설득하고, 그 가입을 종용()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각 마을에서의 그 가입모집 상황이 거의 반강제적일 뿐만 아니라, 재원환자로서 (일본)적십자사에의 회비 불입은 그 부담이 지극히 과대하며 그 고통 또한 막대하다는데 생각이 이르자, 원장 스호오()에 대한 증오가 더욱 심해져, 더욱 더 살의를 공고(ͳ)히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동월 19, 미리 흉행()에 쓰기 위해 동생리 제30호병사 변소 위의 헛간에 은닉해 두었던 예리한 식도(증제3)를 몰래 꺼내둔 다음, 다음 날인 20일 오전8시부터 원장 동상 앞 광장에서 거행되는 항례의 보은감사일 행사에 원장 스호오()가 참렬(֪)할 것을 예상하고, 동일 오전 730분경 전술()한 식도를 품에 넣고 병사를 나와 일반환자 약 3,000명과 함께 동상 앞 광장 도로 서쪽에 도열(֪)하여 원장 스호오()의 도착을 기다리는 중, 동일 오전 85분경 동 원장이 타카하시() 보도과장, 우시지마() 의무과장, 요코카와() 서무과장을 대동하고 자동차로 동상 앞 광장에 도착한 뒤, 즉시 하차하여 도열환자들의 경례를 받으면서 동상 어귀 부근을 지날 때, 피고인은 돌연히 열중(֪)으로부터 뛰어나와 원장 스호오()의 오른쪽 앞을 막아서면서 [너는 환자들에 대해 너무 무리한 짓을 하므로 이것을 받아라]라고 국어(일본어)로 외치면서, 소지한 식도로 동인의 오른쪽 흉부를 1회 찔러 동인의 오른쪽 전흉부 하부(ݻ) 오른쪽 유방부근에 길이 7센티, 3센티, 깊이 13.5센티 심장() 전후벽을 관통하는 자상(߿)을 입혔고, 이 자상(߿)으로 인한 대량출혈로 동일 오전 930분경 동원 원장관사에서 결국은 사망케 함으로서 살해의 목적을 이루었다.

 증거를 살펴보건데 판시()사실 중 피고인이 경성()방면을 배회했다는 점, [너는 환자들에 대해 너무 무리한 짓을 하므로 이것을 받아라]라고 국어로 외쳤다는 점, 창상(߿)의 부위, 정도 및 사망의 원인을 제외한 이외의 사실은, 모두 피고인의 당 공정()에서의 판시와 동 취지의 공술 및 조선식 식도() 한 자루(증제3)의 존재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하고, 창상의 부위, 정도 및 사망원인은 감정인 의사 야규우(׳)가 작성한 스호오()에 대한 감정서 중 판시에 대응하는 기재가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인정하고, 피고인이 경성방면을 배회했다는 점과 [너는 환자들에 대해 너무 무리한 짓을 하므로 이것을 받아라]라고 국어로 외쳤다는 점은, 검사가 피의자 호시야마(ߣ)의 제1회 심문조사중, 동인의 공술로서 판시와 동일한 취지의 기재가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인정한다.

 따라서 판시()사실은 모두가 증명되었다.

 법률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판시소위()는 형법제199조에 해당하므로 소정형()중 사형을 선택하여, 피고인을 사형에 처하는 것으로 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소화17(1942) 820일 광주지방법원 형사부(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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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17(1942) 형상(߾)156

              판 결

 본적 부산부(ݼߣݤ) 영주정() 477번지

 주소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소록도갱생원 중앙병사

              무직

             이춘상() 개명하여 호시야마 슌죠오(ߣ)

                                                                                     27

 위 자에 대한 살인피고사건에 관하여 소화17(1942) 102일 대구복심법원이 언도한 판결에 대해 피고인으로부터 상고의 신청이 있었으므로, 당원 조선총독부 검사 요네하라(ڷ)는 다음과 같이 관여판결(μ̽)한다.(?)

              주문()

 본 건 상고(߾ͱ)는 이를 기각한다.

              이유()

 피고인의 상고 취의()(중략) 원판결(̽)에는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으니, 즉 이미 제1, 2심 공판에서도 진술한 바와 같이, 갱생원당국의 환자에 대한 처우는 너무나 불합법적이며, 도주를 꾀하거나 혹은 반항하는 자를 감금한 뒤 폭행을 가해 사망케 하는 일도 적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6,000명 환자들은 자유를 속박 당해, 상급관청에 그러한 사정을 진술할 길이 없어, 단순한 상해죄를 범하여 그 재판과정에서 환자의 처우에 대한 희망 등을 진술하겠다는 경박한 생각에서 원장에게 일격을 가했으나, 불행하게도 사망의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처음부터 살의(߯)를 가진 행위가 아니라고 하지만, 원판시()에 관련된 피고인의 범죄사실은 원판결(̽) 거시()의 증거들에 의해, 충분히 이를 인정할 수 있으며 기록을 정밀히 조사해도 원심()의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고 의심하기에 족한 현저한 이유를 찾을 수 없으므로, ()는 이유 없음.

 (중략) 피고인이 본 건 범행 당시, 나병환자 특유의 편협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원판결이 인정하는 바이며, 그러한 성향을 가지는 자가 소론()과 같이 인물을 살해했다고 해서 바로 심신쇠약() 상태에 있었다고는 단정하기 어려우며, 기록을 정밀히 조사해도 피고인이 당시 심신쇠약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사유, 즉 원심()의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의심하기에 족한 현저한 사유를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원심이 심신쇠약을 이유로 하는 형()의 경감()을 행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그 조치에 하등의 위법이 없으며, ()는 채용가치가 없으며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446조에 의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소화17(1942) 127

 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 조선총독부 판사 타가하시 류우지()

                                                                      (이하 생략)